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5장 1절『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에크 피스테오스)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디카이오덴테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디카이오덴테스는 분사 수동태로서 믿음으로 의로워졌으니 라는 말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크 피스테오스는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디아는 ~을 통하여 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면 하나님과 화평이 있게 된다.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일치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와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과 화평이 없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5장 2절『또한 그로 말미암아(디) 우리가 믿음으로(테 피스테스) 서 있는(헤 헤스테카멘) 이 은혜(에이스 텐 카린)에 들어감을 얻었으며(텐 프로사고겐 에스케카멘) 하나님의 영광(테스 독세스 투 데우)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카우코메다)』 디는 ~을 통하여 라는 말이다. 테 피스티스는 그 믿음(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엔 헤 헤스테카멘은 그곳에 우리는 서 있었다. 엔 헤는 관계 대명사이다. 헤스테카멘은 현재완료이다. 에이스 텐 카린은 그 은혜 안으로, 텐 프로사고겐 에스케카멘은 그 나아감을 우리가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카우코메다는 자랑하다는 의미다. 현재시제 중간태로서 스스로 뽐내고 다니는 것이다. 다시 번역해 보면, 그러므로 그를 통하여 우리가 그 믿음으로 이 은혜 안으로 나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우리는 서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위에서 자랑하고 있다.
5장 3-4절『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엔 타이스 들맆세신) 즐거워하나니(카이 카우코메다) 이는(호티) 환난(헤 들맆시스)은 인내(헤 데 휘포모넨)를, 인내는 연단(도키멘)을, 연단은 소망(엘피다)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에이도테스)』들맆세신은 압박이다.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밀려가는 그런 압박이다. 카우코메다는 자랑스러워하다. 카이 코메다 엔 타이스 들맆세신은 무엇인가 큰 압박으로부터 밀려가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자랑한다는 말이다. 에이스 호티 헤 들맆시스 휘포모넨 카티르가제타이는 왜냐하면 그 압박이 (보좌) 아래 머무름을 애써 완성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휘포모네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 오래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헤 데 휘포모네 도키멘은 무엇인가를 시도해서 입증하는 것이다. 도키멘은 시도하고 입증한다는 의미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와 임재하실 때, 믿음은 보고 듣고 만짐을 통해서 입증되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도마라는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믿지 못하다가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보지 못하고 음성을 듣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보는 자들도 있고 보고 음성을 듣는 자들도 앞으로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호 로고스로서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여 역사하신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라고 하신 후 성령이 임할 것을 말씀하셨다. 성령세례인 것이다. 성령세례는 구원의 징표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분이 주인이 되시며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을 보고 음성을 들으며 대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휘포모네가 필요한 것이다. 휘포모네를 위해서 주님이 들맆시스를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휘포모네를 통해서 도키마조(믿음의 시도)를 하게 되는데, 성도의 심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라는 소망이 생긴다. 이 소망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언약 속으로 들어간 자가 되는 것이다.
5장 5절『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카타이스쿠네) 하지 아니함(우)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디아 프뉴마토스 하기우 투) 하나님의 사랑(헤 아가페)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휘포모네를 통하여 지성소에 들어감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라는 소망이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 카타이스퀴네는 현제시제, 3인칭 단수이다.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디아 프뉴마토스 하기우 투는 거룩한 영을 통하여 라는 말이다. 성령세례를 받을 때 성도에게 주어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심령 안에 부어지기 때문이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었던 영을 살리기 위한 사랑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아가페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도를 아가페하는 이유는 죽었던 영을 살려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이 성도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인을 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 살지만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5장 6절『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온톤 헤몬 아스데논) 기약대로(에티 카타 카이론) 그리스도께서(크리스토스) 경건하지 않은 자(아세본)를 위하여(휘페르) 죽으셨도다(아페다넨)』에티 크리스토는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온톤 헤몬 아스데논은 우리가 연약하여 있을 때, 아세본은 경건하지 않는 자를 휘페르(위하여) 아페다넨은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지금도 역사한다는 말이다. 2000년 전의 사건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와 관련된 일임을 보여준다. 아페다넨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과거 미완료시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지금도 순간 선간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티 카타 카이론은 지금도 시간을 따라 라는 말이다. 카이론의 기본형은 카이로스(하나님의 시간)이다. 하나님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크로노스)와 다른 개념이다. 시간을 초월하는 그런 시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경건하지 않고 연약한 자를 위한 죽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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