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장 12절『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예수를 주로 영접하는 것은 우리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그렇게 된다. 

10장 13절『누구든지(파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에파칼레세타이) 구원을 받으리라(소데세타이)』파스는 영어로 everybody이다. 에파칼레세타이는 간절히 부르다 라는 의미다. 아오리스트 시제, 중간태이다. 중간태라는 것은 부르는 대상이 부르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렇게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데, 순간 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데세타이는 미래시제 수동태이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구원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단지 성도는 구원을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다. 

10장 14절『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이 말은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그런즉 어떻게 그들이 믿지 않는 그 분 속으로 들어가려고 간절히 부르겠는가, 그들이 듣지 않는 그 분과 어떻게 관계를 맺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가 전파하는 것 없이 듣겠는가』라는 말이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분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분을 부를 수 있으며,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믿음은 성도의 심령 속에 주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믿고, 그 분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10장 15절『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이 사역자들을 복음의 전도자로 세우시는 것은 말씀이신 그리스도(호 로고스)를 전하라는 것이다. 보내심을 받지 않으면 전파하는 자가 없고, 전파하는 자가 없이는 받아드리는 자가 없는 것이다. 주님이 성령을 주시는 것도 바로 이 일을 하게하기 위함이다. 

10장 16절『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테 아코에)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기독교의 복음은 호 로고스를 전하는 것이다.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는 호 로고스를 전하는 것이다. 이게 복음인 것이다. 하나님은 신약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이미 그렇게 하셨다. 아브라함에게도 여인의 후손인 씨의 약속을 말씀하셨고, 모세에게도, 이사야에게도 말씀하셨다. 복음 전도자는 호 로고스를 전해야만 한다. 그런데 말씀한다고 다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테 아코에는 우리의 그 들음이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이라고 번역했다. 아코에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선지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10장 17절『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아코에)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레마토스 크리스투) 말미암았느니라(디아)』아코에는 설교를 통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심령 가운데 임재하신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즉 믿음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디아는 ~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아코에 디아 레마토스 크리스투는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라는 것이다. 레마토스는 기록된 성경 말씀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성도가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장 18절『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에쿠산)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호 프동고스 아우톤)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타 레마타 아우톤)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에쿠산은 듣는다 라는 말로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순간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묘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간 순간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느냐 라는 것이다.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한다. 호 프동고스 아우톤은 그들의 그 소리이다. 그들의 라는 3인칭 복수 소유격 대명사가 생략되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타 레마타 아우톤은 그들의 그 말씀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 기록한 성경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소유한 그 말씀들이 땅끝까지 이른다는 말이다. 

10장 19절『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스라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아브라함부터 내려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이다. 믿음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위한 방법은 백성이 아닌 이방인을 들어 쓰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해 주시는 것이다. 

10장 20절『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제투신)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휴레덴) 내게 묻지 아니한(에떼로토신) 자들에게 나타났노라(에게노멘) 말하였고』 이사야는 담대하게 말하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대신에 이방인을 택하여 구원의 도구로 사용할 것을 말했다. 바울이 이사야의 말을 인용한 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제투신은 현재시제이고, 휴레덴은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에테로토신은 현재시제이고, 에게노멘은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신도가 하나님을 계속 찾는다고 해서(현재시제)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분이 아니고(아오리스트) 신도가 계속 묻는다고 해서(현재시제)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답변하는(아오리스트)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타나시고 싶을 때 나타나시고 말씀하고 싶을 때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로마교회 안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헬라인 그리스도인들간에 신앙 문제로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선민사상을 강조하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정론을 강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둘 다 의미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인 것이다. 

10장 21절『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사야 시대도 그랬지만 초대교회 시절에도 그랬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천하만민의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은 바라보시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누구나 받아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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