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로마서 11장 19-21절『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테 아피스티아)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테 피스테이)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율법주의 유대인들의 꺽인 자리에 헬라인 기독교인들이 접붙임을 통해서 세운 것은 그들이 소유한 믿음 때문이다. 그들이 테 아피스티아(그 믿지 않음)와 테 피스테이(그 믿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은 유대인들에게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미하고, 헬라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이다. 엄밀히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동일하다.
11장 22절『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크레스토테나)과 준엄하심(아포토미안)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크레스토테나는 기본형이 크리스토테로서 기뻐한다는 의미다. 아포토미안(기본형은 아포토미아)은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들은 기뻐하지만 믿음이 없는 자들은 날카롭게 대하신다.
11장 23-24절『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뒤나미스)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카타푸신)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만일 헬라인들이 본성을 따라 살던 돌감람나무에서 잘라냄을 당하고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는다면, 원래 좋은 감람나무의 가지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본성을 따라 자신이 속했던 감람나무에 접붙임 받는 것이 얼마나 쉽겠는가 하는 것이다. 카타푸신은 성장을 의미한다. 돌감람나무는 성장과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좋지 않은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믿음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가 좋으면 믿음도 자라지만, 그렇지 않으면 믿음도 좋은 믿음이 되지 않는 것이다.
11장 25절『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뮈스테리온)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토 플레로마 톤 에드논)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뮈스테리온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의미한다. 기독교에 신비주의를 이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잇는데, 그들은 이 비밀을 모르는 것이다. 토 플레로마 톤 에드논는 이방인들의 그 충만함까지이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숫자가 들어있는데, 헬라어 성경에는 없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이스라엘의 일부를 우둔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이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릭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분량까지 이르게 될 때 비로소 유대인들의 우둔함이 깨뜨려질 것이다.
11장 26-27절『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아세베이아스)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아펠로마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아세베이아스는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의미한다. 이사야 59장 20절의 말씀을 인용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시온에 오신 것은 야곱 자손들을 죄로부터 돌이켜서 시온으로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시온은 죽은 뒤에 가는 천국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아펠로마이는 제거하다 잘라내다 라는 의미로 1인칭 단수, 가정법 아오리스트 시제, 중간태로 사용되었다. 하나님 스스로 순간적으로 제거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에게서 죄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며 과정이지만,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보장이 없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유대인들의 구원은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11장 28절『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아가페)을 입은 자라』복음으로 인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가 멀어지고 원수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잃어버린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복음으로 인한 구원을 싫어하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가 완전히 제거되고 이로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맺은 언약이 성취될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아가페는 죽었던 영을 살리는 사랑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죄 가운데 빠졌음에도 그들을 살리려는 의도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100세가 되어 죽은 자가 같이 되어도 하나님이 자녀를 주신다는 그것을 믿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치있는 믿음인 것이다.
11장 29절『하나님의 은사(타 카리스마타)와 부르심(헤 클레시스)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타 카리스마타는 그 은사이고, 헤 클레시스는 그 부르심이다. 관사가 붙어있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님은 아무나 부르시고 택하고 은사를 주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시고 택하고 은사를 주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11장 30절『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엘레데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는 바로 아브라함과 같은 순종이 없었다는 말이다. 바울이 말하는 너희가 전에는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세상 속에서 살고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엘레데테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수동태이다. 하나님에 의해 순간적으로 경홀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순간적인 긍휼의 은혜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그 때부터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11장 31-32절『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쉼클레이세)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순종하는 자가 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성령이 그것을 깨닫게 해주고고 그는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쉼(함께)클레이센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적으로 함께 가두어두었다 라는 것이다. 성령을 받는 것은 순간적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함께 가두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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