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로마서 14장 1절『믿음(테 피스테이)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프로스람바네스데)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메 에이스 디아크리세이스 디알로기스몬)』테 피스테아는 그 믿음이다. 그 믿음은 종교화된 율법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을 의미한다. 당시 로마교회는 율법주의적 유대인 기독교인과 헬라인 기독교인이 서로 대립되고 있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믿음이 강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믿음이 연약한 자라는 것이다. 

프로스람바네스데(기본형은 프로스람바노)는 프로스(~을 향해)와 람바노(받아드리다)의 합성어이다. 프로스람바노는 중간태로 사용되었는데, 너희들 자신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그들이 받아드려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하는 것이다. 디아크리세이스는 디아(~을 통하여)와 크리시스(판단)의 합성어로, 무엇인가를 통하여 추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아크리세이스 디아로기스몬은 무엇인가를 통한 추정들의 무언가를 통한 판단들이다. 메 에이스는 을 향해 가지 말하는 부정형이다. 즉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나 생각을 통해서 그들을 판단하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14장 2절『어떤 사람(호스)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파게인 판타) 믿음(피스튜에이)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호 아스데논)는 채소만 먹느니라(에스다에이)』 헬라어 성경을 보면, 호스 멘 피스튜에이 파게인 판타 호 데 이스데논 라카나 에스다에이 이다. 이를 번역하면,『그런데, 그 사람은 참으로 모든 것을 먹기 위해 믿는다. 그런데, 연약한 자는 채소들을 먹는다』라는 것이다. 호스는 그리스도의 그 믿음을 가진 자이다. 파게인은 먹기 위해 라는 말로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했다. 율법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생각없이 먹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먹으라고 하면 생각하지 않고 먹는 믿음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 것이다. 에스다에이는 현재시제 능동태이다. 이것은 습관적으로 채소를 먹는 것을 의미한다. 먹는다의 동사는 파게인(먹을 만한)과 에스다에인(먹느니라)이 있는데, 파게인은 불규칙적인 식사를 말하고, 에스다인은 규칙적인 식사를 의미한다. 사도행전의 베드로의 환상에서 들은 잡아 먹으라(뒤손 카이 파케) 라는 동사가 파고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유대교의 식사가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보여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채소를 먹는 것이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자는 어떤 시간 어떤 자리에서도 상관없이 음식을 섭취하되 자기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먹는 것이다. 

14장 3절『먹는(에스디오)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엑수데네이토)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호 데오스 아우톤 프로셀리베토)』 에스디오는 일상적인 식사를 의미한다. 구약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한 것을 먹는 사람은 그것을 먹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반대로 그것을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엑스데네이토는 엑스(~로부터)와 우데이스(아무것도 아닌)의 합성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다, 무시한다는 의미다. 로마교회에서 헬라인 기독교인들이 율법주의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먹는 문제로 무시했는데, 반대로 유대인들이 헬라인 기독교인들을 율법을 어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서로 무시하고 판단하지 말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프로셀리베토는 아오리스트 시제 중간태로서, 자기 자신을 향해 받으시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 기독교인이든 헬라인 기독교인이든 모두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로 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14장 4절『남의 하인(아오트리온 오아케텐)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스테케이) 것이나 넘어지는(팦테이) 것이 자기 주인(토 퀴리오)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스타데세타이)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뒤니테이 가르 호 퀴리오스 스테사이 아우톤)』알로트리론은 기본형이 알로트리오스로서 다른 사람이다. 알로는 약간 다른 것을 의미한다. 오아케텐은 집 안의 하인이다. 다른 사람의 하인은 바로 로마 교회의 유대인 기독교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비판하는 자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주로 교회의 지도자 급이었다. 그들은 헬라인 기독교인들을 하인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남의 하인이라고 말한 남(다른 사람)은 예수님을 지칭한다. 예수님의 하인을 마치 자기 하인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자기와 동급으로 놓는 죄를 짓는 것이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자가 누구냐 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너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는 말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주인(토 퀴리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서 있거나(스테케이) 또는 넘어진다(팦케이)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주님은 우리의 사역을 돕는 분이 아니라 세우시는 분이다. 주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세움을 받을 것이다(스테데세타이).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를 세울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뒤니테이 가르 호 퀴리오스 스테사이 아우톤)

사도바울이 음식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쓸데없는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대신 주님의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 해야할 일은 주님으로부터 세움을 받는 일이다. 

14장 5절『어떤 사람(호스)은 이 날(헤메란)을 저 날(파르 헤메란)보다 낫게 여기고(크리네이) 어떤 사람(호스)은 모든 날(파산 헤메란)을 같게 여기나니(파르네이) 각각 자기 마음으로(엔 토 아디오 노이) 확정할지니라(플레로포레이스도)』 플레로포레이스도는 기본형이 츨레로포레오이다. 플레레스(충분히)와 포레오(지탱하다)의 함성이다. 무엇인가 충분히 확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시제, 수동태이다. 어떤 날에 대한 판단을 율법이나 교리로 하지 말고 심령 속에 임재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확증되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14장 6절『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퀴리오)를 위하여(에스디온)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퀴리오)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퀴리오)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퀴리오가 세번 나오는데, 주를 위하여(에스디온 퀴리오) 라는 말이 아니라 주와 함께 라는 의미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먹어도 된다는 충분한 확증이 들면 먹어도 되고 확증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일을 심령 속의 예수 그리스도의 확증에 따라 하게 되면 모든 일에서 감사하게 된다. 

14장 7절『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헤아우토) 사는(제)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우데이스 헤아우토 아프드네스케이)』헤아우토는 3인칭 단수 재귀대명사 여격이다. 즉 자기 스스로이다(self).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 스스로 사는 자가 없고 자기 스스로 죽는 자도 없다는 것이다. 제는 목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자오(살다)와 조에(생명)은 육체적인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우데이스 헤아우토 아프드네스케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을 하다가 목숨을 바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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