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로마서 6장 6절『우리가 알거니와(투토 기노스콘테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호티 호 팔라이오스 헤몬 안드로포스 쉬네스타로우데)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히나 카타르게데 토 소마 테스 하마르티아)』그노스는 관계를 통해서 알게되는 것을 의미한다. 죄의 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죄의 근원은 사탄이다. 죄의 종은 사탄의 종이라는 말이다.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고 미혹한 자는 사탄이고 그 미혹에 빠진 자들이 하와(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이다.
(호티 호 팔라이오스 헤몬 안드로포스 쉬네스타로우데)는 『우리의 그 옛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이다. 옛사람과 새사람을 대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히나 카타르게데 토 소마 테스 하마르티아)그 결과 죄의 그 몸이 완전히 쓸모 없어졌다는 것이다. 카타르게데는 카타(강조 접두사)와 아르게오(쓸모없어지다)의 합성어다.
6장 7절『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데티카이오타이)을 얻었음이라』데티카이오타이는 현재완료 수동태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의롭게 되려면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엣사람이 죽어야 하며, 그 탐욕의 우상이 죽어야하고, 곧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6장 8절『만일(에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아페다노멘)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쉬제소멘)을 믿노니(피스튜오멘)』 에이는 가정법 접속사이다. 어떤 사실이 일어난 것으로 간주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라는 것이다. 아페다노멘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순간적으로 죽었다는 말이다. 성령을 받을 때 순간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쉬제소멘은 우리가 함께 살것이다 라는 미래시제다. 쉬(함께)와 자오(살다)의 합성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한 존재가 된다.
6장 9절『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네크론)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우케티 아포드네스케이) 사망(다나토스)이 다시 그를(아우투:그의 죽음) 주장하지(퀴리유에이)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기에 더 이상 십자가에서 죽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케티(않는다), 아포드네스케이는 죽는다 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런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완료 분사를 사용했다.
네크론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기 때문에 다 이상 십자가에서 죽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나토스 아우투 우케티 퀴리유에이는『그의 죽음이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이 죄로 인한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단순히 인간의 죄사함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을 통해 막혀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건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6장 10절『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테 하마르티아) 단번에(에파팍스) 죽으심(아포드네스코)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에파팍스 아포드네스코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테 하마르티아는 여격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죄에서(죄와 함께) 라는 의미다. 그가 죽었다는 것은 그 죄와 함께 단번에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도 하나님과 함께 라는 말이다. 결국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함께 죽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는 회개가 반드시 수반된다. 회개하는 자가 죄와 함께 죽는 자가 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에 대한 회개이다.
6장 11절『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멘, ~데 용법이다. 한편으로 ~ 다른 한편으로 라는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이런 표현을 볼 수 없다. 헤아우토스(나는 여겨야 한다) 에이나이(~이라고) 네크루스(죽은 자들) 멘(한편으로) 테 하마르티아)죄와 함께) 존타스(살고 있으면서) 데(다른 한편으로) 토 데오(그 하나님과) 엔 크리스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번역하면,『이와 같이 너희도 한편으로는 죄와 함께 죽은 자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고있는 자들로 여기라』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양극단을 보여주신다. 죄와 함께 죽은 자는 죄와 함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있는 자가 되지만,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놀라운 말이 된다. 그래서 날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라는 것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이 얼마나 헛된 말인가 알 수 있다.
6장 12절『그러므로 너희는 죄(헤 하마르티아스)가 너희 죽을 몸(토드네토 휘몬 소마티)을 지배하지(바실류에토) 못하게 하여(메) 몸(소마티)의 사욕(에피뒤미아이스)에 순종(휘파쿠에인)하지 말고』
바실류에토는 왕노릇하다 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토드네토 휘몬 소마티는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죽음에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자기 몸을 십자가에 완전히 내놓아 죄와 함께 죽은 사람이 되며, 죄의 종노릇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휘몬 소마티 에이스 토 휘파쿠에인 타이스 에파뒤미아이스 아우투 이 말은 『너희의 그 죽은 몸 안에서 그것의 그 정욕들에 순종함 속으로 들어가면서』 라는 것이다. 이 말 다음에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로 연결된다.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음을 믿었는데, 도리어 죄에 대해서 더 민감해져서 자신이 짓는 세상죄에 대해서 근심하는 상태가 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옛사람의 죽음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왜 인간이 죄인이 되었으며,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어려운 부분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지었고, 이 원죄를 물려받아서 어쩔 수 없이 죄인 되었지만,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비논리적인 것에 사로 잡혀있다면 옛사람의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있는데, 이 탐욕이 하나님 나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고 그 원죄의 바탕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고 죄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벗어나는 것은 오직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신도들은 대부분 세상죄에 대해서 민감하다. 그러나 탐욕인 옛사람에 대해서는 민감하지 않다. 옛사람인 탐욕이 세상죄를 이끈다. 세상죄에 대해서보다 탐욕에 대해서 민감해져야만 한다. 그러면 세상죄에 대해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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