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으로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사도행전 3장 1절『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아네바이온)』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번씩 성전에서 기도를 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는 자들은 그 방향으로 기도(프로슈케)를 했다. 아네바이온은 미완료 동사로서 규칙적으로 계속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동사다. 프로슈케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얼굴을 대면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3장 2절『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에바스타제토)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에티둔) 자라』 에바스타제토 역시 미완료 동사로서 늘 그렇게 규칙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에티둔은 앉혀두다라는 의미로서 미완료동사다.
3장 3-5절『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이돈)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아데니사스)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에이펜)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이돈은 아오리스트 시제다. 순간적으로 보는 것이다. 아데니사스도 아오리스트 시제다. 우연히 순간적으로 보는 것이다. 에이펜도 마찬가지다. 베드로와 요한이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다. 평소에는 무관심하다가 그날 바라본 것이다.
3장 6절『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엔 토 오노마티 예수 크리스투 나조라이우)일어나 걸으라 하고』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베드로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것이다. 성령의 사역도 마찬가지로 어떤 계획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 성령이 이끄는 대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명령을 할 때 치유가 없다면, 예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아무나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성령이 말하는 대로 해야만 한다. 『엔 토 오노마티 예수 크리스투 나조라이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라는 말이다. ~으로(영어 by) 와 ~안에서(영어 in)는 다른 의미다. 토 오노마티는 관사가 있으므로, 이름이라기 보다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관사가 없으면 이름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소유하고 있는 호 로고스의 이름 안에서 걸어가라는 것이다. 표적과 기사는 호 로고스 안에서 일어남을 말해준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라고 했을 때, 그 예수는 심령 속에서 임재하는 호 로고스 안에서 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3장 7-10절『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순간적으로 힘을 얻고 걷게 된 것이다. 앉은뱅이의 믿음과 상관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이신 호 로고스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를 낮게 하셨다는 것이다.
앉은뱅이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다가 걸으니 성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이다. 그의 희망은 걸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보는 것이었다. 율법에 불구자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호 로고스께서 아신 것이다.
3장 11-12절『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베드로와 요한이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호 로고스께서 이런 일을 하신 것이라고 그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은사 사역자들이 자기가 한 일처럼 행동한다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3장 13-15절『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톤 파이다)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톤 파이다는 어린 소년이라는 의미다. 유대인들은 예수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사렛에서 태어나 겨우 삼십 조금 넘은 그 소년과 같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영화롭게 했다는 것이다. 성도도 마찬가지로 톤 파이다와 같은 존재이지만 주님이 택하시고 사용하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지만, 하나님이 다시 부활시킨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신다고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3장 16절『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에피 테 피스테이 투 오노마토스 아우투)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에피 테 피스테이 투 오노마토스 아우투는『그(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호 로고스)의 그 믿음 위에서』라는 의미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호 로고스의 믿음이다. 두가지의 믿음을 동시에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호 로고스의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권능을 나타낸다. 이 신실하신 권능이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아무나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호 로고스의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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