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사도행전 6장 1절『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디아코니아)에 빠지므로(파레데오룬토)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과부들은 초대교회 당시 여전도사를 지칭한다. 디아코니아는 봉사, 섬김이다. 파레데오룬토는 소홀히 하다라는 의미다. 헬라파 여전도사가 히브리 신도들에 대해서 섬기므로 헬라파 신도들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헬라파 신도들이 히브리파 신도들을 원망했다는 것이다.
6장 2절『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 투 데우)을 제쳐 놓고 접대(디아코니아)를 일삼는(트라페자이스)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톤 로곤 투 데우는 하나님의 호 로고스(그리스도)이다. 제자들의 사역은 호 로고스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디아코니아는 봉사, 섬김이다. 6장 1절에서는 구제로 표현했으나, 2절에서는 접대로 표현하는 등 번역의 오류들이다. 디아코니아 트라페자이스는 식탁의 섬김이다. 하나님 말씀은 전하지 않고 음식 봉사만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6장 3-4절『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테 디아코니아 투 로구)에 힘쓰리라 하니』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는 기준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라는 것이다. 열두 사도들은 기도하는(프로슈케)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쓴다는 것이다. 프로슈케는 지성소 기도다. 심령 속의 지성소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인 것이다. 테 디아코니아 투 로구는 그 말씀(호 로고스)의 섬김(사역)이다. 호 로고스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신도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역자들이 하는 기도는 대개 세상적인 기도가 많고, 말씀도 호 로고스로부터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책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로 세워진 일곱 집사들은 섬김 봉사 일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6장 5-6절『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프로슠사메노이) 그들에게 안수하니라(에페데칸)』프로슠사메노이와 에페데칸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표현한다. 성령의 뜻으로 그렇게 한다는 의미다. 열일곱 집사를 세우는 것은 사실상 열두사도가 아니라 성령이라는 것이다.
6장 7절『하나님의 말씀(호 로고스 투 데우)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테 피스테이)에 복종하니라(휘페쿠온)』호 로고스 투 데우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의미한다. 도라고 번역된 것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을 연상한다. 테 피스테이는 그 믿음이다. 휘페쿠온은 휘페(~아래서) 쿠온(듣다)의 합성어다. 테 피스테이 휘페쿠온은 믿음 아래서 들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들었는가?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들었다는 말이다. 구약의 제사장은 원래 성소와 지성소에서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 무리가 믿음으로 심령 속의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의 그 직분대로 돌아온 것을 의미한다. 성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보이는 물리적인 성소에서 심령 속의 성전으로 바뀐 것이다. 왕 같은 제사장(만인 제사장)이라는 말은 바로 심령 속의 지성소에 나아가는 성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예수만 믿으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6장 8-9절『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른 바 자유민들(리베디노)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리베디노는 유대교인(기독교에서 자유주의자)들을 의미한다. 유대교를 갖고 있지만, 기독교에 대해서 인본주의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인본주의자들은 표적이나 기사 능력을 무시한다. 스데반은 섬김 봉사의 일을 하도록 지명되었는데, 사도들이 하는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고 한다. 오늘날 일반 신도가 이렇게 행하면 목회자들이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만인제사장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이다.
6장 10-15절『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마가는 자유주의 신앙을 갖는 자와 스데반을 여기서 비교하는 것이다. 스데반은 심령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다는 표현을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심령 속에 주님(호 로고스)의 임재를 믿는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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