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사도행전 11장 19-21절『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톤 로곤)을 전하는데(랄룬테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엘라룬) 주 예수를 전파하니(유앙겔리조메노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랄룬테스 톤 로곤은 호 로고스를 말했다는 것이다. 엘라룬은 마찬가지로 호 로고스를 말하고, 유앙겔리조메노이는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복음은 호 로고스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 기독교인과 헬라인 기독교들에게는 호 로고스를 전했는데, 유대교인들에게는 성경에 있는 말만하고 호 로고스를 전하지 않은 것이다. 헬라인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기독교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가 없었다. 그런데, 호 로고스에 대해서 말을 들은 후에 놀라운 그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는 것이다. 

11장 22-26절『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엔 토 퀴리오) 머물러 있으라(프로스메네인)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아가도스) 사람(아네르)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엔 토 퀴리오는 주 안에서 라는 말이다. 프로스메네인은 오래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 안에 오래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다. 아네르 아가도스는 선(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이다. 아가도스는 하나님께 사용되는 용어다. 그래서 아네르 아가도스는 하나님의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있는 일을 하는 것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것은 동격을 의미한다. 

안디옥의 부흥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졌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가장 믿을만한 바나바를 보낸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복음을 가르쳤고, 호 로고스 복음 안에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다소에서 칩거하던 바울을 친히 찾아가 동역자로 삼았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호칭을 붙인 것은 바나바와 사울과 공동체의 일원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불러준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인 안디옥 공동체가 바나바와 바울의 깊은 섬김과 말씀지도를 통해 또 다른 삶, 밀알의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몸소 보여준 한 알 밀알의 삶이 공동체의 모범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찬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을 꿈꾸는 안디옥 공동체는 이후, 이방선교의 중심축을 이루는 공동체로 자라났다.

11장 27-30절『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인 선지자들이다. 에베소서 4장 11절을 보면 선지자를 세우신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았다고 한다. 이들은 호 로고스의 사역자들이다. 사도는 오늘날 교회의 총회장격이다. 선지자는 예언하는 사람들이다. 복음 전하는 자는 부흥사역을 하는 자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목사는 교회에서 목양하는 자들이다. 오늘날과 차이가 있는 것은 부흥사역하는 자들과 선지자가 없는 것이다. 부흥사역을 전문으로 하지 않고, 목사가 겸임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언을 하는 선지자가 여러 명 있었다. 

안디옥교회의 부흥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방문한 선지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헬라인과 유대인의 구분 없이 하나로 어우러진 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감동을 하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찬양을 올렸다. 그런데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천하에 닥칠 큰 흉년 앞에 자신의 안전을 염려하지 않았다. 더욱이 하나님께 재난을 막아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을 신뢰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을 찾았다. 안디옥 교회의 결정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대단히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대흉년을 막아달라는 기도도 필요하겠지만, 그들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도움을 통해 예루살렘 공동체를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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