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을 만한 믿음

사도행전 14장 1절『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에이셀데인) 말하니(랄레사이)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에이셀데인과 랄레사이는 아오리스트 시제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들어가고 호 로고스로 말하는 것이다. 

14장2-7절『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에페이데산테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에피 토 퀴리오) 담대히 말하니(팔레시아조메노이)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에피 토 로곤)을 증언하시니(마르투룬티)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쉬니돈테스) 도망하여(카테퓌곤)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에페게이란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에피 토 퀴리오는 주님 위에서라는 것이다. 팔레시아조메노이는 파라(많은)와 시아메노이(말하다)의 합성어로 호 로고스로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즉 주님 위에서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에피 토 로곤은 은혜의 말씀(호 로고스) 위에서 라는 것이다. 마르튀룬티는 증언하다라는 의미다. 즉 호 로고스 위에서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증언을 한 것이다. 쉬니돈테스와 카테퓌곤이라는 동사도 아오리스트 시제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모양이다. 

14장 8-11절『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에쿠신) 바울이 주목하여(아테니아스) 구원 받을 만한 믿음(피스틴 투 소데나이)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에쿠신은 아오리스트 시제다. 그(앉은뱅이)가 복음을 들을 때 호 로고스의 말씀이 들려진 것이다. 아테니아스도 아오리스트 시제다. 피스틴 투 소데나이는 순간적으로 구원되어지는 것의 믿음이다. 즉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앉은뱅이의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는 믿음을 주신 것이다. 구원의 주체(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 객체(앉은뱅이)가 믿는 믿음과 연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대므로 병이 나아졌는데,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한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구원에 이르는 객체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은 거짓복음인 것이다. 앉은뱅이는 이전부터 그런 믿음을 가졌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바울의 설교를 통해서 믿음이 생긴 것은 분명한 것이다. 

14장 13-15절『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이 지역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이렇게 높이게 된 것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오래 전에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루스드라에 왔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신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을 냉대하고 배척하게 된다. 그래서 진노한 두 신은 루스드라를 멸망시켜 버리고 말았다는 신화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신들을 잘못 대접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차에 평생을 앉아서 지내던 앉은뱅이를 불러일으키는 바울과 바나바를 보며 옛날의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다시 내려온 것으로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14장 16-18절『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계시를 주었다는 것이다. 

14장 19-21절『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아나스타스)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아나스타스는 아오리스트 시제다. 루스드라에서 놀라운 사역을 하고 있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부터 쫓아 와서 이들을 돌로 쳐 죽이려 했다. 

14장 22-24절『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테 피스테이)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들맆세온)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페피스튜케이산)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파레덴토)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테 피스테이는 그 믿음이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그 믿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믿는 대부분은 종교화된 믿음이다. 성경을 통해서 배운 지식으로 믿음을 가지는데, 그것은 자기가 믿는 믿음인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은 왜 인간이 구원의 대상이 되는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 무슨 죄를 지었는가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이것을 회개해야만 하나님이 구원의 손길을 주신다. 

들맆세온은 기본형이 들맆세스이다.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지성소로 들어가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머물도록 하나님이 떠 미는 것을 의미한다. 환란으로 표현된 것은 오역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한다는 식으로 번역된 것은 잘못이다. 페피스튜케이산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이다. 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분과 연합되는 믿음인 것이다. 파레덴토는 위탁하다는 말이다. 즉 믿음은 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가서 그 분께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이다. 

14장 25-28절『말씀(호 로고스)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뒤란 피스테우스)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바울은 다니는 곳마다 호 로고로 말을 하는 것이다. 뒤란 피스테우스는 주님이 여시는 믿음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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