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사도행전 17장 18-21절『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그노나니)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아덴(아테네)에서의 전도에 대한 말씀이다.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던 바울은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바울에게 격렬한 분노가 일어난 것이다.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쾌락주의자들인 에피쿠로스주의자들과 이성을 절대시하던 스토아 철학자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 어떤 자들은 바울에 대해 쓰레기 같은 말쟁이라고 욕을 한 것이고, 또 어떤 자들은 바울을 이방 신들을 전하는 자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말을 좀 더 상세히 듣기 위해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터에서 떨어져 있는 독립된 공간인 아레오바고로 바울을 데리고 간 것이다. 그들이 바울에게 알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노나이는 기본형이 기노스코인데, 관계(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야다와 같은 개념이다. 

17장 22-23절『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아그노스토 데오)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종교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알지도 못하는 신을 섬긴다고 지적했다.  아그노스토는아 아(부정)와 그노스토(알다)의 합성어다. 즉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그런 신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참 하나님을 소개하며, 참 신을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개한다. 

17장 24-27절『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누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시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17장 28-29절『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누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그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우상으로 만든 그런 신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17장 30절『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회개는 자신이 처한 존재의 상황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어제 지은 죄를 회개한다고 내일 죄를 안짓는 것인가? 세상죄의 문제가 아니라 죄를 짓게 하는 존재의 문제인 것이다. 죄를 회개해도 죄를 짓게 하는 존재가 부모로 부터 받은 육적인 것이면 그것은 회개가 아닌 것이다. 일시적으로 죄를 면피 받으려는 것에 불과하다. 예수의 피로 죄를 씻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가 있어야만 된다. 회개는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없는 육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와 마주 서서, 그 십자가가 『나』라는 육적 존재의 십자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아는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말하기를『하나님이 정하신 한 사람, 그 날에 공의로 심판하신다』고 했다. 정하신 한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17장 31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크리네인)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파라스콘) 증거를 주셨음이라 하니라』 크리네인은 판단이라는 의미다. 최후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파라스콘은 옆에서 갖는 믿음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미래에 심판하러 오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 지금 현재 옳고 그럼을 판단하는 그런 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최후의 심판도 하실 것이지만, 현재적 판단을 말하고 있다. 호 로고스는 진리이시면서 공의로우신 분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호 로고스를 너무 멀리 생각하는데, 그 분은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계셔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다. 

17장 32-34절『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바울이 설교하는 가운데, 양과 염소가 나뉘어지듯이 그런 모습이다. 이렇게 나뉘어지는 이유는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나오듯이 깊히 상고하고 마음의 밭을 가는 자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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