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장 1-2절『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어떤 제자들은 아볼로의 제자들이다. 바울이 성령에 대해서 그들에게 물었는데,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알고, 다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제자들은 왜 성령에 대해서 모르는가? 기독교의 핵심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신앙이다. 그런데, 성령을 모르는 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아볼로가 교회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성령에 대해서도 듣지도 못한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의 많은 교역자와 신자들이 이와 같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예수를 믿고, 미래에 다시 오실 예수를 믿는 것이다. 현재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을 알지도 모르는 것이다. 

19장 3절『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요한의 세례는 물 세례를 의미한다. 물세례는 죄를 씻는 형식적 세례와 마음의 할례라고 부르는 세례와 연결된다. 마음의 할례가 곧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물세례는 죄를 씻는 형식적 세례와 마음의 할례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도가 물 세례를 받을 때 죄를 씻는 정도로 생각하면,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식적인 물세례는 마음의 할례와 연결되어야 한다.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세례는 다시 태어나고 죄를 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모르는 신도가 오직 물세례만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의 대부분 신자들이 이와 같은 모습이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자녀와 아들은 다른 차원이다.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사도적인 소명을 받아야 하며,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능력과 권세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성령세례도 모르면서 아볼로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그 제자들은 교회의 신도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성령세례는 다른 것인가? 거듭나게 해주는 성령을 구원의 성령, 성령세례는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주시는 한 성령이시다. 그러나 역사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성령세례,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는 성령을 성령 충만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이 말이 틀렸다고 말을 할 수 없으나 용어의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물세례와 성령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19장 4-5절『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여기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주시는 세례를 성령세례라고 한다. 요한이 주는 물세례는 마음의 할례와 연결되어야 한다. 물세례를 받는 형식을 통해서 마음으로는 물에서 죽고 성령에 의해 다시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 때 성령은 신자의 영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세례를 다시 준다. 이때 성령은 신자의 위에서 역사하신다. 초대교회 당시는 오순절 성령세례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셨다. 그래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환상을 보는 것이다. 

19장 6-7절『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엪 아우투스)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엪 아우투스는 그들 위에 라는 의미다. 바울이 주는 성령 세례는 위에서 역사하시는 보혜사 성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하고 권능을 행하게 돕는 것이다. 

19장 8절『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석달 동안 강론했다고 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되는가? 신도들은 에덴동산을 이 땅의 한 부분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이 땅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창조하시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으므로 그들을 다시 에덴으로부터 내 보내셨다고 한다. 일명 에덴동산에는 하나님과 뱀(사탄)이 등장하고, 아담과 하와도 있으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다. 아담은 에덴동산 밖에서 지음을 받았으나, 하와는 에덴동산 안에서 아담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에덴동산과 이 땅은 어떤 관계를 나타내는가?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와 같은 그림자 역할을 한다. 뱀은 사탄이고 하와는 그를 따르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에 해당하며, 에덴동산 밖의 땅은 세상이라는 갇혀있는 곳이며,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한 그리스도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을 세상으로 데려오고 마지막 아담은 그들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데려 가는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골로세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라고 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죄를 지은 천사들에게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창조되신 최초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라는 영으로서하나님 나라이다. 오직 하나님 만이 존재하시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두번째, 그리고 영의 몸을 입고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떠 영의 몸도 있느니라』에서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콘)은 영의 몸을 의미한다. 한글 개역개정의 신령한 몸이라는 번역이 잘못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몸은 영의 몸인 것이다. 다시는 죽지 않고, 변신도 가능하며, 벽을 뚫고 오시는 그런 몸을 가진 분이다. 세번째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셋째 하늘에 대해 말했는데, 바로 심령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두고 말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 성도의 육체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는 다시 새롭게 나타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인 에덴동산으로 그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이 등장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이며, 영과 영의 몸과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모두 성령의 능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과 같은 땅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이다. 누가 통치하느냐 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그러나 통치하는 방식에 있어서 첫째 하늘은 성부 하나님 만이, 둘째 하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셋째 하늘은 거듭난 성도들이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모든 하늘들이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19장 9절『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비방하는 자들은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두란노서원(오늘날 신학교와 같은 개념)을 세우고 제자들을 양육했다. 

19장 10절『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톤 로곤 투 퀴리우)을 듣더라(아쿠사이)』 톤 로곤 투 퀴리우는 그 주님의 그 말씀이다. 즉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쿠사이는 아오라스트 시제이다. 아쿠사이는 영어의 to부정사이다. 즉 듣도록 하기 위하여 라는 의미다. 아시아에 있는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 주의 음성을 듣도록 하기 위하여 2년 동안 서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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