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사도행전 26장 1-3절『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바울은 새롭게 부임한 총독 베스도와 분봉왕 아그립바, 그리고 그의 누이 버니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25장에 이어 26장에서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특별히 26장에서는 바울 자신이 과거 유대교 믿던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기독교인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심하게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는지 이야기 하고 있다.
26장 4-6절『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에팡겔리아스)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바울은 유대교에서 핵심으로 활동하였으나 갑자기 유대인들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 다메섹으로 가던 가운데 그가 그렇게 핍박하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됨을 고백한다. 바울의 인생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의 일생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 바울은 그가 남은 생애를 어떠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된다.
바울이 그의 소명으로 여기며 일평생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그의 삶을 잘 요약해 줌과 동시에 이 말씀은 신약 성경 역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선교에 관해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을 통해 복음 전파에 대한 바울의 열정은 총독과 분봉왕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있다. 비록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생명의 위협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는 복음을 끝까지 전한 것이다.
에팡겔리아스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언약)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처럼 많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약속의 씨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옛언약)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약속(새언약)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씨로 삼으셨다. 아브라함의 자손들도 그 믿음을 가지면 약속의 씨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씨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그 씨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26장 7절『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엘피제이)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이 열두 지파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는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은 약속을 이루기 위함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와 신약에서 예배는 비슷한 면이 있으나, 그들이 열심히 제시와 예배를 하지만 믿음이 없다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믿음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예배는 대부분 의식화되어 있다. 예수님은 예배에 대해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즉 성령과 진리(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예배인 것이다. 진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심령 속의 호 로고스와 만나고 그 분에게 드리는 것이 예배라는 것이다. 엘피제이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이 소망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심령 속 호 로고스와 친밀해지는 것이다.
26장 8절『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네크루스)을 살리심(에게이레이)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네크루스는 죽은 자들이다. 에게이레이는 살아나게 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자를 의미한다. 이 말의 의미는『영적으로 죽은 자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는데 왜 못믿는가』라는 것이다.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영적으로 죽은 자였는데, 에수를 만난 후에는 영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못믿느냐 라고 말을 한다. 바울은 현재적 부활을 말하고 잇는 것이다.
26장 9-12절『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과거에 바울은 영적으로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에 참여하였다고 고백한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과거의 바울과 같은 믿음이 될 수 있다.
26장 13-14절『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다메섹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다. 다메섹에서『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다음에 예수님이『내가 너를 세워서 이런 일을 하겠다』라고 하신 후 말씀이다. 회개하면 눈이 뜨진다는 것이다. 자신이 영적으로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이 빛을 보내주실 것이다.
26장 15-18절『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피스테이 테 에이스 에메)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클레론:상속자)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피스테이 테 에이스 에메(πιστει τη εις εμε)는『내 안에 있는 믿음』이다. 개역개정 성경에서『나를 믿어』가 객관적 대상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그런 믿음이다. 불완전한 믿음이다. 믿음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수의 믿음인가? 나의 믿음인가? 나를 부인한 예수의 믿음이 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내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나를 부인하고 예수 안에 있는 자』가 거듭나는 자가 된다.
바울은 예수님을 몰랐던 시절에는 존경받는 삶, 성공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셔서 만나주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로는 종과 증인의 삶을 살게된다. 사탄의 권세로부터 놓임을 받아야 예수께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권세에 억눌려 있는 자다. 그래서 내가 믿기로 결단한다고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회개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야만 죄사함을 얻게 된다.못박히신 예수를 바라보는 자 만이 구원받는다.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예수가 주가 된다. 예수가 주가 되지 않으면 사탄이 주가 된 자다. 사탄을 따르는 자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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