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사도행전 21장 1절『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바울은 예루살렘에 결박과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기어코 올라가고 있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면 결박과 죽음마저도 받아들이겠다는 바울의 마음이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결박과 죽음으로 위협하는 자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자신이 핍박했던 그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과 죽음의 길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걷고 있는 것이다.
21장 4절『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디아 토 프뉴마토스)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엘레곤)』 디아 토 프뉴마토스는『성령을 통해서』라는 말이다. 엘레곤은 미완료 과거시제이다. 성령을 통해서 라는 말은 아오리스트 시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으로 성령이 하시는 말인 것처럼 여겨져서 한 말이 된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권했는데, 바울은 권함을 받지 않았다. 그들의 권함을 바울이 받지 않자 14절에서『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바울이 사도행전 20장 23절에서『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여기에서 성령은 토 프뉴마(Holy Spirit)이다. 바울이 말하기를『나는 성령의 매임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도시를 옮길 때마다 성령께서 말씀해 주신다』는 것이다.『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해준다는 것이다.
21장 5-6절『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덴테스 타 고나타) 기도하고(프로슈카메노이)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무릎을 꿇는 것과 기도하다는 단어가 모두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는 하나님이 순간 순간 말씀하시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울을 포함한 우리라는 사람들이 프로슈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것이다.
21장 7절『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초대교회 당시 예언자들은 남자들이 주로 했는데, 여자가 예언자라는 것이다. 율법에서는 여자는 그런 일을 하지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성령의 시대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21장 10-12절『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여기도 마찬가지로 아가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성령이 하신 말씀을 전했는데, 에루살렘에 가면 환란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바울과 함께 하는 우리라는 자들이 그들의 생각을 섞어서 환란이 있을 것이므로 예루살렘에 가지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미 환란을 알고 있었고, 주의 뜻대로 행하는데, 바울과 함께 하는 자가 막는 그런 상황이다. 제자들이 생각하기에『예루살렘으로 가면 뭔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가지 말라고 한 것이다.
21장 13-14절『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그때 그때 행동하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된 환란을 잘 알고 있으므로 오히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울은 오히려 약간의 짜증섞인 말로 어찌하여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라고 말했다. 예언은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사람들이 임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호 로고스로부터 그 의미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예언자가 예언한 것을 심령 속의 호 로고스께 여쭈어 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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