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1장 1절『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다. 마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바나바의 조카였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타나는 마리아가 마가의 어머니였다. 사도행전 13장 5절에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즉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날 때, 수행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요한이라는 사람은 바로 마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가의 또 다른 이름이 요한이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마가가 버가에서 중도하차를 하게된 것이다. 버가는 험지인 산악지방을 앞두고 있는 지역이다. 중도하차 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표현되지 않으나, 이를 계기로 바울이 마가를 선교 활동에 좋지 않은 선입감을 갖게된다. 아마도 힘든 선교 여행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도행전 15장 36-41절에서『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은 선교 여행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마가가 등장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9-11절에서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바울은 선교지에서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갈라섰던 기억이 있는데, 왜 마가를 데려오라는 것인가? 바울이 말하기를『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말했다. 


베드로전서 5장 12절에서『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바벨론이라는 표현은 로마를 지칭한다. 베드로가 마가를 아들이라고 말한다. 마가는 바나바의 육적 조카였지만, 영적으로는 베드로의 아들이라 지칭하는 것이다. 마가가 베드로를 통해서 신앙적으로 성숙된 자가 되었음이 틀림없는 것이다. 아마도 바울이 이러한 정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버가에서 중도하차한 마가가 아니라 생각한 것을 알 수 있다. 


마가는 베드로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마가의 이 문장은 베드로가 사용하는 문장과 비슷하다. 마가가 복음서를 쓰게된 경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A.D. 64년에 로마의 대화재 사건이 있었다. 네로가 방화범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로마 정치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원형 경기장에 그리스도인들을 가두어서 맹수들의 밥이 되게 했다. 이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작은 소책자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게 마가복음이다. 마가복음은 A.D. 65-70년에 기록된 것이다. 고난과 절망 속에서 전해진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 되었다. 


1장 2-3절『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테 에레모)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소명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회개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먼저 알리는 것이다. 테 에레모는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세상에 던져진 자라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 구불구불했다면, 세례요한이 이제 곧게 만들어서 나아가기 좋게 한다는 것이다. 


1장 4-5절『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아페신 하마르티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아페신 하마르티온은 죄들을 용서받는 의미다. 죄들은 원죄와 세상죄를 포함한다. 죄를 자복한다는 의미는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임을 철저히 고백하고 돌이킨다는 것이다. 


1장 6절『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세례요한(마지막 율법 시대)이 먹은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 이 음식들은 시편 119편 103절의 말씀처럼, 회개의 말씀(석청)과 율법 속에 있는 자에 대한 심판(메뚜기)을 상징한다. 


1장 7-8절『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비교하고 있다. 예수님의 성령세례 만을 말하고 있다. 물세례는 물에서 육적인 혼이 죽고, 성령으로 새생명의 혼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남을 의미한다. 성령세례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에게 사역자로 세우기 위해 성령세례를 주시고 각종 은사적인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좋아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보기에『저 사람들, 술 취했구만』라고 했다. 술 취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령세례를 받아서『새 술에 취했다』고 말한다. 새 술은 바로 『천국이 임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 구원이 전달되기 위해서 성령세례를 구한다. 제자들은『지금 아침이 아니냐 여기 술 마신 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태복음에서는 세례요한은 성령과 불세례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으므로『불세례』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한번 사용되었다.『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예수님이 삼년 동안 하신 것은 불을 땅에 던지러 온 것이다. 12장 50절에서『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 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옵소서 그리고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도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을 따르려고 하니까 죽게된 것이다. 우리도 내 소원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한다면 기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불세례다. 불세례는『죽을 것 같은 것을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자기를 태우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과정이 불세례와 같은 것이다. 거듭난 성도는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동시에 받는 것이다. 불세례는 알곡을 만들기 위한 연단과정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쭉정이는 불세례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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