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장 13-22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세리와 죄인들은 모든 사람들로 부터 정죄받는 자들이다. 예수님이세리인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라고 예수님을 비난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이스라엘에 오면 먼저 자기들에게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불만이 되었다. 자기들은 죄인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 인정받는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죄인이다. 영이 죽어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다 영으로는 죽어있다는 말이다.  2장 2절에서『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허물과 죄로 죽은 이유가 바로 세상 풍속을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죽어있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고 있다 할지라도 세상을 따르고 있다면 주인은 마귀인 것이다. 에베소서 2장 3절에는『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은 사랑의 자녀가 아니라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적인 경건 중의 하나가 금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대속죄일에 온 백성으로 금식하도록 명하셨다. 그 날에는 제사장도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으며, 향을 피우고 피를 뿌리며 하나님께 나아갔다. 더불어 온 백성도 먹기를 그치고 함께 나아가야 했다. 또 어떤 일로 하나님의 진노가 느껴질 때면 그들은 온 종일 금식하며 울어야 했다. 자기 옷을 찢고 재를 뿌리며 먹기를 그치고 울어야 했다. 이것이 구약시대의 금식의 모습이다. 구약의 질서에 따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것은 그들의 경건모습이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라고 묻고 있다. 주님은 자신을 혼인집의 신랑으로, 제자들을 혼인집의 손님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신랑이신 예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기쁨의 혼인잔치가 시작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시므로 금식의 문제에 대해 답하고 계시다. 


지금도 구약적인 의미로 금식을 가르치고, 마치 그것이 의의 한 기준이나 되는 것처럼 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으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맞지도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새로운 천을 잘라서 낡은 구멍난 옷에 붙여 짜집기 한 것과 같은 부조화스러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요한의 제자들의 틀에 매인 금식요구에 대하여 주님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라고 하셨다. 만약에 그렇게 하면 새 옷의 천은 긴장도가 강하기 때문에 헌옷에 대고 짜깁기 해봤자 헌옷을 오히려 더 해어지게 하고 만다. 


예수님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기준으로 하는 낡은 옷이 아니라, 성령의 법으로 하는 생베라는 것이다. 그래서 섞일 수 없는 것을 말해주신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낡은 베를 생베에 붙이는 일들이 계속이어지고 있다. 성령을 믿으면서도 율법에 근거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물은 율법을 나태낸다. 예수님의 첫 갈릴리 지방의 가나라는 곳에서 혼인잔치에 초대되었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바닥이 났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불완전한 혼인잔치, 즉 구약의 상황을 말해주신다. 그런데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 포도주는 예수의 보혈을 상징한다. 죄를 씻는 문제가 구약에서는 물로 표현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의 보혈로 나타난다. 보혈의 의미는 구속의 의미를 나타낸다. 하나님이 예수의 피값을 사탄에게 주고, 회개하는 죄인들을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를 사해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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