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마가복음 3장 1-6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안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쉬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세기 1장 1절에『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 나라는 안식 그 자체이다. 모든 세상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 즉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안식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안식이다. 하나님 스스로가 안식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식을 쉰다 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에는 또 일해야 하는 날이 오지만 하나님 나라 안식에 들어가면 일하고 쉬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천지창조를 하기 전에는 안식이었는데, 천지창조를 하게 되므로 안식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천지창조를 다 끝내고 하나님이 이 땅에서 손을 떼시고 안식을 하신 것이다.
창세기 2장 1-3절에서『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안식하시니라』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안식과 같은 것이다. 천지창조에서 말하는 안식은 이 세상에서 창조의 일이 끝나는 멈춤이라는 말이다.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다 라는 말은 세상에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날은 물질세계의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날이다. 하나님이 물질세계 속에서 이 날을 복을 주신 것은 물질적 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을 주신다는 말이 담겨져 있다. 즉 이 세상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이 영원한 안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빛을 말할 때, 하나님이 빛이시라고 말했다. 그런데 태초에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흑암의 깊음 위에 있게 된 것을 본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흑암 속에 빛이 있으라 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빛이 있었고 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빛이신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왕국으로 창조하기 위한 것 같으면, 하나님의 빛으로 비추면 되는데 왜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해와 달이 필요가 없다』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시고『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는 말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상이 완전하게 지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완전한 세상이라면 물질의 빛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의 빛으로 비추시면 되는데, 하나님의 빛 대신에 물질의 빛을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예수님이 빛이신데, 요한복음 1장 5절에서 참 빛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의 빛은 참 빛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의 빛은 단지 참 빛을 설명하기 위한 그림자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빛을 비춰주시지 않고 물리적인 빛을 만드신 이유는 이 어두움 가운데 장차 하나님이 빛을 보내주리라 하는 약속이다. 고린도후서에서 약속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의 어두운 가운에서 라는 것은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세상을 말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세상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어두움 가운데서 빛이 비취리라』라고 말하는 것은, 앞으로 빛이 비춰질 것이라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창세기에서『빛이 있으라』라고 말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비취리라 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비추던 그 빛이 믿는 자들에게 왔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이 믿는 사람들에게 빛으로 오셨다는 말이다.『빛이 있으라』하신 그 하나님이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다. 즉 창세기에서 말하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 라는 약속의 말씀인 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이 장차 암흑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빛을 비추시겠다 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5절에 빛이 비춰주신 것이다.
창세기 1-3정에서『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안식하셨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일을 하다 말고 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복(하늘의 복)을 주시고 이 세상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에 들어가겠다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안식을 주겠노라』고 하는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안식에 들어있는 자들이다. 어느 날을 정해서 안식일이라고 한다면 그 날만 예수 그리스의 안식에 들어있는 말이 되므로 논리적이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지으신 물질세계, 안식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다.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성도들에게 온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빛이 있으라』 라고 하신 것과 같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을 보내 주시는 것 처럼, 창세기에서 말씀하시는 안식을 통해서 장차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안식일을 지켜라 라고 하신 것은 애굽으로 부터 나와서 시내산에 있을 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가두신 이유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하신 것이였다.『부르짖으라』고 하신 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이 한 백성을 선택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조치였다. 그 민족을 끄집어 내어서 창세기 1-3절에서 약속하신 안식에 대한 약속을 율법을 통해서 이제 이스라엘과 새롭게 시작을 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라 라고 하시는 것을 신명기에서 볼 수 있다. 『너희는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애굽에서는 고통이었는데, 하나님이 건져주셨으니 안식을 주신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것이 안식의 시작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의 완성인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첫째 이유는 애굽에서 종되었지만, 지금은 종이 아니다 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안식을 믿지 않는 것이다. 사실 구약에서 안식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참 안식을 위한 연습과정과 같다. 안식을 지키라고 하신 두번째 이유는 대대 후손과의 언약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표징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애굽을 나와서 애굽을 벗어났다 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키는 것은 영원한 언약의 표징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안식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것을 믿고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지키지 않는 것은 애굽으로 부터 고통 가운데 해방되었고, 앞으로 영원한 참 안식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안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돌에 쳐 죽이라고 하신 것이다. 돌에 맞아 죽은 것을 보고 백성들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안식일을 범하면 죽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원한 안식을 백성들이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이유는 두가지인 것이다.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장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위의 설명대로 라면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반문할 수 있다. 안식에 아직 안들어 갔으므로 안식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안식은 주인이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성도들에게 안식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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