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사도행전 22장 16절『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에피칼레사메노스)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에피칼레사메노스는 세례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연결된다. 다시 번역하면『세례를 받고 주의 이름(오노마 아우토:호 로고스)을 불러 죄를 씻으라』는 것이다. 죄를 씻는 의미는 죄가 제거되는 것이다. 죄는 세상죄를 짓는 것도 좁은 의미에서 죄이지만, 본질적인 의미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의미한다. 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은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입으로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마음의 회개의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바울은 그 동안의 삶에서 자신의 주인된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세례는 형식적으로는 물 세례로서 죄를 씻는다. 동시에 마음에서 할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세례이다. 여기에서 성령은 구원의 성령으로 사람의 속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사역자로서 나아갈 때 권능을 주기 위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권능이 주어져서 각종 표적과 기사가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 때의 성령은 돕는 성령(보혜사)으로서 위에서 역사하신다. 22장 17-20절『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바울은 다시 주님의 임재 가운데서 대화를 하는데,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에게 가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들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다. 주님이 주시는 예언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 예언과는 다른 것이다. 22장 21절『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을 주님이 아시는데, 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셨는가 그리고 심지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나가라는 말씀이다. 주님이 바울을 예루살렘에 보내신 것은 유대인들의 상황을 정확히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의 상황을 체험하고 이방인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다. 22장 22-23절『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역시나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군중들은 바울을 경멸하며 가증스럽게 여겼다. 바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대로 주님의 말씀을 전했으나 그들의 눈에 바울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오히려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자신들의 모세율법을 업신여기는 자로 비쳤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전도는 주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자에게 가서 전하는 것이 기본이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는 것이다. 억지로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의 형식을 보면, 믿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사정 사정해서 믿도록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에게 전도를 하되, 믿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나가라는 것이다.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22장 24-26절『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바울은 심문을 받으면서 채찍질을 당할 뻔 했다. 아마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가 아니었으면 상당한 곤욕을 치를 뻔 한 사건이 된다.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인지 알게 되었을 때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을 합법적인 재판 없이 불법으로 대하였기 때문이었다. 22장 27-30절『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천부장은 이전에 많은 돈을 들여서 로마 시민권을 얻었지만, 바울은 태어나면서 시민권자이기에 이 사실을 알고 두려워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 오직 호 로고스께서 하시는 명령에 충실했다. 그동안 자신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선 것부터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서 회심한 것 등 모든 것을 말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오히려 분노하고, 주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바울을 이방인의 전도에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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