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마가복음 11장 1-14절)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1장 1-2절『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엥기주신)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아페스텔레이)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엥기주신과 아페스텔레이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모습을 나타낸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순종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11장 3-4절『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마태복음 21장 5절에서는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나귀새끼는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라는 의미를 갖는다. 


11장 5-6절『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아페칸 아우투스)』여러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어떤 이들(복수)이 제자들에게 물었고 그들이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나귀 새끼는 하나인데, 그들이 풀어주었다(아페칸 아우투스)는 말은 그들은 가족 단위의 구성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11장 7-10절『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는 『구원하소서』를 뜻하는 히브리에서 유래한 말이며, 기쁨과 승리를 표현하는 말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여호와여, 호산나』(시편 118:25)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시편 118:26)라고 부르짖으며 찬양하였다. 이 구절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의 축일에 찬양했는데, 호산나를 외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은 위의 시편 구절(118:25-26)을 되풀이하면서 나뭇가지를 길에 깔고 예수님을 환영하였다. 


11장 11절『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베다니는 죽었던 나사로를 살렸던 지방이고, 예수님은 베다니에 가면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가 있는 집으로 향한 것이다. 


11장 12-14절『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무화과의 때가 아님은 열매가 없음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은 열매가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구원은 이방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해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으나, 그들에게 열매가 없는 것이다. 


교회에서 예수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한 자도 열매 맺지 못하는 자가 된다. 디모데후서 2장 19절에서『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여기서 주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이름이다.『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았느니라』가 아니라『불의에서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부른다』는 말이 헬라어로『오노마저』라는 말로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말이다.『에피칼레오마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가족(surname)으로서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뜻이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 사람들이 아들도 아니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예수의 가족이 아니면서『주』라고 부르고 있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여 자기부인의 삶의 살지 않으면 거듭난 삶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주의 백성이라고 우기는 것이다.『믿습니다』라고 말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구원받는다. 거듭나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듭남의 핵심은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그러면 씻음을 얻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는 것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옛사람은 광야에서 죽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죽은 예수와 연합되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 바로 성찬에서 잔을 마시기 전에 떡(예수의 몸)을 먹는 것이다. 죽은 어린양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날로 먹지말고, 삶아서 먹지 말고, 불로 구워서 먹으라고 말한다. 남은 것은 불로 태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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