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요한복음 2장 1절『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에게네토)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엔)』에게네토는 문법적으로 아오리스트 중간 디포테로서, 순간 있게하다 라는 말이다. 엔은 과거용법으로 어머니는 혼인잔치에 필요에 따라 초대받은 것이다. 잔치의 일을 도우러 간 것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의 첫 표적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 그리고 하인들의 순종 등등 이런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은 예수님의 처음 표적이었다. 성경에는 혼인잔치에 대해서 세군데 나온다. 가나의 혼인잔치, 마태복음 22장에서 나오는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베푼 혼인잔치,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이다. 세 혼인잔치는 모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장 2절『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에클레데)』에클레데는 아오리스트 수동태이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생각지도 않게 그곳에 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혼인잔치의 혼주와는 관계가 깊지 않은 모양이다. 


2장 3절『포도주가 떨어진지라(휘스테레산토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휘스테레산토스는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설명하기 위한 모형이다.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혼인잔치가 끝나기 전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은 혼인잔치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혼인잔치는 온전한 혼인잔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완전한 혼인잔치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2장 4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여자여 라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는 것이지, 육의 어머니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감추어진  혼인잔치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을 의미한다. 


2장 5절『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호 티 안 레게) 그대로 하라 하니라』 호 티 안 레게는 혹시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면 이라는 의미로서 한글개역에서 혹시(안)라는 단어가 번역이 되지 않았다.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2장 6-7절『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케이메나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게미사테)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에게미산)』케이메나이는 중수 디포테이다. 모든 집들이 다 돌항아리가 여섯개 있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어떤 정결 예식이 있을 때 사용되는 전통이라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항상 외출하고 오면 사막지대라서 물로 씻어야 했다. 이것은 장로들의 유전으로 지키던 것이었다. 


게미사테와 에게미산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말하고 하인들이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포도주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물과 포도주의 차이가 있다. 예수님이 물항아리 여섯개에 물을 가득채울 것을 말씀하셨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구약의 율법을 말한다. 물이 가득차게 되다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복음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율법이 가득차게 되면 이 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된다는 말이다. 


2장 8-10절『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물항아리는 여섯개인데,『물이 항아리 입구까지 찼다』는 것은『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하다보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스스로 죄인임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데, 발견하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율법을 잘지켜서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말은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 라는 말이다. 물은 구약의 율법이지만 포도주는 새언약의 피를 상징한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서『저녁먹은 후에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마지막 유월절에 예수님은『새언약인 피』라고 하셨다. 새언약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비밀이 있고,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새언약이다. 


율법으로는 완전한 혼인잔치가 될 수 없지만, 새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잔치는 온전한 혼인잔치가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새언약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새언약은 로마서 6장 3절에서 처럼 죄인이 회개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2장 11-12절『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에피스튜산 에이스 아우톤)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는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니라』에피스튜산 에이스 아우톤은 그의 속으로 들어가 믿었다 라는 의미다. 전에는 제자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지만 표적을 본 후로는  그 속으로 들어가 믿은 것이다. 그를 더욱 신뢰하므로 믿음의 깊이가 더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믿음은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말하는 그런 믿음은 아닌 것이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자기가 믿는 믿음은 어떤 표적을 보고 점차 자라지만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아닌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서 십자가에서 죽게 되었을 때 다 도망가버렸다. 베드로는 세번이나 예수를 부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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