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절『그런데 바리새인 중에(에크)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아르콘)라』에크는 ~로부터 라는 것으로서, 바리새인들로부터 나온 자라는 의미다. 아르콘은 우두머리다.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의 우두머리였지만, 그 파로부터 나온 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임마누엘 신앙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를 바라볼 때 임마누엘로 바라본 것이다.
3장 2절『그가 밤에(뉙토스)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뉙토스는 명사 소유격으로 “밤의”가 된다. 수식하는 명사가 없을 때는 소유대명사가 된다. 밤의 것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영적 어둠의 상태로 예수님께 왔다는 말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그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믿은 것이다.
3장 3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아멘) 진실로(아멘)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겐네데 아노덴) 아니하면(에안) 하나님의 나라(톤 바실레이안 투 데우)를 볼 수 없느니라』아멘 아멘이라는 말은 정말로 그러하다는 말의 표현이다. 겐네데 아노덴은 위로부터 태어나다 라는 의미다. 아노덴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톤 바실레이안 투 데우)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통치의 개념이다. 아직 성도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으므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과 반대되는 하나님 나라를 표현한 것이다. 에안은 만일 이라는 가정법이다. 가능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장 4절『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예수님은 하늘로 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는데, 니고데모는 두번 태어나야 한다는 말로 오해한 것이다. 그래서 한글 개역개정에도 거듭난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3장 5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휘다토스)과 성령(프뉴마토스)으로(엑스)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물은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잘 설명된다.『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그래서 세례는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결론적으로 물에서 육적인 것이 죽고,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육과 영에 대해서 설명이 이어진다. 성령으로 위에서 태어난 자만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게 된다는 말이다.
3장 6절『육(사르코스)으로 난 것은 육(사륵스)이요(에스틴) 영(투 프뉴마토스)으로 난 것은 영(프뉴마)이니(에스틴)』사륵스는 종교심이다. 인간 속에는 종교심이 있는데, 자기가 믿는 종교심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므로 육적 존재가 된다.그러나 성령에 의하여 위로부터 태어난 자는 영적 존재라는 말이다. 에스틴은 존재한다는 의미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바리세인들이 믿는 율법주의는 바로 사르코스로서 육적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사륵스는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대를 이어 인간들이 종교심을 갖게 되었다. 모든 인간이 이렇게 사륵스를 가지고 있으나, 모두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찾으므로 육적 존재일 뿐이다. 사륵스인 존재는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3장 7절『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겐네데나이 아노덴)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겐네데나이 아노덴은 위에서 태어나다 라는 의미다.
3장 8절『바람(토 프뉴마)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텐 포넨)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토 프뉴마는 바람이 아니라 성령이다. 프뉴마의 고유 의미는 바람이지만, 영이라는 의미도 있다.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영을 의미하며, 영에 관사가 붙으므로 성령이 된다. 텐 포넨은 성령의 음성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는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 분의 음성은 들을 수 있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고 은사주의에 빠진 자들이 이단이 되는 것이다. 성령은 성도를 진리로 인도하신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은사는 이단이라는 말이다.
3장 9절『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뒤나타이 타우타 게네스타이)』 뒤나타이는 문법적으로 중수디포테를 사용한다. 디포테는 사역을 의미한다. 수동태이므로 이런 일들이 되게 하는 것을 하게 할 수 있습니까 라는 것이다.
3장 10절『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우 기노스케이스)』우는 not이라는 부정의 의미이고, 기노스케이스는 히브리어 야다(관계를 통해 아는 것)와 같은 의미다.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율법에 따라서 희생제물을 바치고 죄사함을 받는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가운데, 이 희생 제물이 바로 장차 오실 약속의 씨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이다.
3장 11절『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레고)는 아는 것(오이다멘)을 말하고 본 것(헤오라카멘)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우리라고 번역된 레고는 1인칭으로서 나(예수 그리스도)이다. 아는 것과 본 것은 객관적으로 누구나 알고 보는 그런 것이다. 예수님이 객관적인 사실을 증언하는데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증언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온 메시야라는 것을 말해도 믿지 않고, 표적을 여러 번 보여주었는데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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