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2절『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땅의 일라는 것은 예수님이 객관적인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지내면서 메시야를 기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야가 왔는데도 그를 믿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온 메시야라는 것을 말해도 믿지 않고, 표적을 여러 번 보여주었는데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늘의 일이란 성령에 대해서 말을 하면 과연 믿겠는가 라는 말이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을 해도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3장 13절『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여기서 인자로 번역된 말의 헬라어를 보면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그 아들 그 사람)이다. 그 아들과 그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이다.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내려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첫사람 아담이기도 하고 마지막 아담이기도 하다. 번역을 다시 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곧 그 아들 그 사람(그리스도)이며 하늘에서 내려옴이 없었다면 올라감도 없었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첫사람 아담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이 되셔서 죄의 몸을 영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다시 그리스도가 마지막 아담으로 내려와서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3장 14절『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휘포센)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휩소데나이) 하리니(데이)』휘포센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간 들었다. 능동형이다. 휩소데나이는 들려지는 것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수동형이다. 하나님이 높이 들어올린 것이다. 부활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는 반드시 해야한다는 의미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어 죽게 했는데, 모세가 살려달라는 간구의 기도를 통해서 놋뱀을 만들어 들게해서 백성들을 죽음에서 구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므로 온 인류를 영으로 살게했다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과 연합되는 자는 영적으로 살게된다는 말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3장 15절『이는 그를(엔 아우토) 믿는 자(호 피스튜온)마다 영생(조엔 아이오니온)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호 피스튜온 엔 아우토는 그(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그 사람이다. 그를 믿는 것과 그 안에서 믿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그를 믿는 것은 신자가 믿는 것이다. 그 안에서 믿는 것은 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신자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믿음과 연합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한 자가 되는 것이다. 조엔 아이오니온은 예수님의 생명을 의미한다. 


3장 16절『하나님이 세상을(톤 코스몬) 이처럼 사랑하사(에가페센) 독생자(톤 휘온 톤 모노게네)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호 피스튜온 에이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톤 코스몬은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을 의미한다. 톤 휘온 톤 모노게네은 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를 의미한다. 호 피스튜온 에이스는 그 믿는 자 속으로 라는 말이다. 그를 믿는 자가 아니라 그 믿는 자 속으로 들어가는 자라는 말이다. 그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에가페센의 기본형은 아가페(사랑)이다. 헬라식의 사랑은 네가지가 있다. 부부간, 부모 자식간, 친구간의 사랑이다. 그런데 아가페는 신약성경에 등장하여 헬라어에 도입된 단어가 된다. 원래 헬라어에는 없었다는 말이다. 이 아가페는 가치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아가페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는 공의로서 죄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그런데 그 공의의 하나님이 죄인을 위해 대신 스스로 인간이 되셔서 죽으셨으며 그래서 죄인도 죽은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공의이시고 사랑이시다. 그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죄인이 화평하게 되었다. 그래서 화평 가운데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이런 죽음을 스스로 하시는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세상에 있는 인간들의 영이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가페의 사랑은 가치에 대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아가페의 사랑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3장 17절『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크리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디 아우토)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크리네는 심판이 아니라 판단하다는 의미다. 재판관이 판단(심사)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이 아들을 보낸 것은 세상을 판단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디 아우토는 그(그리스도)를 통해서 라는 말이다. 


3장 18절『그를 믿는 자(호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는 심판(크리네타이)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에이스 토 오노마)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호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은 그 믿음(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자라는 의미다. 크리네는 판단이다. 에이스 토 오노마는 이름 속으로 라는 말이다. 그 이름 속으로 들어가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이다. 


3장 19절『그 정죄(헤 크리시스)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아가페산) 것이니라』헤 크리시스는 그 판단이다. 어둠에 속한 자들은 어둠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어둠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3장 20-21절『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에르가)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텐 알레데이안)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엔 데오 에스타인)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텐 알레데이안은 그 진리(예수 그리스도)이다. 에르가는 일, 사역을 의미한다. 엔 데오 에스타인은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다라는 의미다. 진리를 따르는 일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가 존재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란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죽었던 영을 살리는 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이 된다. 이 땅에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