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22-23절『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에밮티젠)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밥티존)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에밮티젠은 물세례를 베푸는 것이다. 세례를 베푼 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주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세례는 물에서 육의 몸이 죽고 다시 하늘로부터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요한이 주는 밥티존도 물세례이다.
3장 24-25절『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카다리스무)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제테시스)』제테시스는 한 논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카다리스무는 결례(의식)로서 요한이 주는 세례를 의미한다.
3장 26절『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논쟁의 핵심은 요한이 물세례를 주었는데, 강 저편에 있는 예수라는 분(요한이 증언하던 분)도 왜 물세례를 주는가 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 2절에서 말한다.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장 27절『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에안)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한은 물세례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준다. 하늘에서 태어나는 것이 세례라는 것이다. 세례를 행하는 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례받는 자가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세례의 형식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만일 세례의 형식이 중요하다면, 모두 물 속으로 들어가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물을 뿌리는 의식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특히 요한이 주는 물세례는 정결의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세례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곧 예수님이 주는 세례가 참 세례라는 것이다. 참세례는 물과 성령으로 주는 세례인 것이다. 그래서 세례받는 자와 세례주는 자가 모두 성령으로 연결될 때 참 세례가 이루어진다. 『만일(에안) 하늘에서 (그에게:아우토) 주신 바 아니면』그에게 라는 부분이 개역개정에는 빠져 있다. 그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즉 하늘로부터 예수님에게 성령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하늘로부터 태어남이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이다.
3장 28절『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세례요한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 앞에 보내신 자라는 것을 너희도 증언하라고 하신다. 세례요한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세례의 주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3장 29절『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신부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오직 예수님이 그들을 취하시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 정도라는 것이다. 친구는 결혼식에 참여한 신부의 들러리들이다. 신부의 들러리가 신랑의 소리를 듣고 기뻐하는데, 신부도 당연히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할 것이다. 예수님은 성도를 향해 친구로 삼으신다. 친구는 마음을 나누는 가까운 자라는 것이다.
3장 30절『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엘랕투스다이)』세례요한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엘랕투스데아는 나 자신을 쇠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3장 31절『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위(하늘)로부터 오시는 분은 예수님이고, 땅에서 난 자는 세례요한임을 말해주고 있다.
3장 32-33절『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그는 예수님이시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증언을 받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성부 하나님이 그 증언을 받는 자를 참되다 라고 도장을 찍는 것이다.
3장 34절『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타 레마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예수님이다. 타 레마타는 그 말씀들이다. 타 레마타는 하나님이 하신 그 말씀들이다. 예수님 자신이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말을 듣고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연결된다. 이때 성령을 받는 것은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3장 35절『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아가파)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아가파의 기본형은 아가페로서 가치에 대한 사랑이다.
3장 36절『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라고 말을 하는 자들은 아들에게 순종하는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을 믿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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