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장 1절『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유대인의 명절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 있다.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키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당했는데, 이제 그들은 이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자 말자는 뜻으로 명절을 지키면서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명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목적은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5장 2-4절『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이 말은 당시 미신이 얼마나 심각하지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과거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한 유대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병자는 죄인을 의미한다. 죄인들은 성전에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데, 신비주의에 빠져 성전을 두고 베데스다 못에 가서 고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5장 5-6절『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휘기에스) 하느냐 』 예수님이 이스라엘에게『38년된 병자』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처럼, 우상과 미신을 믿고 있는 것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이『네가 낫고자 하느냐』에서『낫다(휘기에스)』라는 말은 히브리어『하야』이라는 말로『살아있는』이라는 말이다. 그래서『너 살기를 원하느냐』라는 말이다. 그 말은 『너는 죽은 자』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5장 7절『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병자가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이렇게 하염없이 넣어줄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살려주기 위해 오신 메시야를 이렇게 기다리지만, 알지 못하고 미신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들의 미신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를 믿는 것을 나타낸다. 


5장 8-10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네 자리(38년 동안 앉아 있었던)는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아모스 3장 12절에서『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열국으로 흩어질 것을 말하고, 장차 그리스도로 인해서 다시 회복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네 자리』의 침상은 바로 아모스 선지자가 표현한 이스라엘이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환란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말해주신다. (예수님의 재림시 이스라엘의 회복) 그 동안 이스라엘이 멸망되어 흩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8년 병자가 안식일에 고침을 받았다. 


안식은 쉬는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38년 된 병자에게도 안식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안식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다 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의 주인이시다. 예수님과 연합되지 않는 자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때가 무엇인가? 바로 안식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져서,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안식을 주시는 것이다. 38년된 병자는 이스라엘을 나타내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5장 11-13절『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병자가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인 것이다. 그런데 병을 고침을 받은 자가 누가 병을 고쳐준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배운 지식으로 알 뿐이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로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보고 말씀을 듣지 못하면 그 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5장 14절『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하마르타네) 말라 하시니』그런데 그 후에 예수님이 그에게 가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심령 속에 찾아오시는 주님과 같은 모습이다. 하마르타네는 죄를 범하는 것인데, 하나님과의 단절이 죄라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대한 회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상태에서,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으면 모두 악한 존재가 된다』라는 말이다. 즉 율법을『스스로 지켜서 의로운 자가 되어보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자는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데, 스스로 율법을 지켰으니 의로운 자가 된다』라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라는 것이다. 『스스로 의인될 수 있다』고 계속 우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회개하라』고 외친 것이다. 율법으로는 의인이 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말씀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떠나『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나, 하나님없이 율법의 기준으로『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죄인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으므로, 스스로 하지 말고『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이 바로『회개하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38년된 병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5장 15절『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유대인들은 안식에 일을 하는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다.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백성들로 인해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그들은 안식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도 안식을 지키려고 하는(주일성수도 마찬가지) 자들은 모두 안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을 지킨다는 것은 안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5장 17-18절『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에르가제타이) 나도 일한다(에르가조마이)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에르가제타이와 에르가조마이는 문법적으로 중수디포태를 사용하고 있다.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일은 추수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추수하는 것이다. 


5장 19절『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블레페)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블레페는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도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바라보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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