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마가복음 14장 66-72절)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삼년간 제자들이 엄청난 기적과 경험을 했음에도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가는 믿음인 것이다. 베드로는 배를 나와 물위를 걷는 목숨을 거는 믿음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를 버리리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어 목숨을 걸 수 있는 믿음 속에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의 믿음은 자기가 믿는 믿음이다.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나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하하늘로 부터 나지 않은 자는 베드로처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육적 존재인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로부터 나는 믿음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는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다. 못박혀 죽는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은 내적인 옛사람도 함께 죽는 것을 말한다. 그 옛사람은 바로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 죽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여기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사탄의 머리가 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옛사람도 함께 죽어야만 한다. 내속에 있는 탐욕이라는 우상의 머리가 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사람들은 옛사람이 죽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거듭난다는 의미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자기(옛사람)를 신뢰하는 것은 결국 사탄을 신뢰하는 것이며,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시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말하지만 옛사람이 죽지 않는 한, 사탄을 따르는 자이고,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예수가 주가 되어서 예수를 위해 산다고 말을 들을지 모르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될 것이다. 이게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내가 믿는 믿음에서, 거듭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이르게 해야만 구원받는다.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 거듭나는 것은 육의 깊은 곳에 있는 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회개하라고 계속 말씀하고 있다. 회개의 의미를 모른채 오늘도 내일도 죄를 고백하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거듭난 것이 아니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 자체다. 회개하면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회개는『자신은 주님을 따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이 종교행위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회개의 시작도 못한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에서『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사탄이 베드로를 합법적으로 청구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돌이키지 않으면 모두가 믿음에서 떨어진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삼년간 예수님을 따랐는데,『돌이키라』고 말한다. 무엇을 돌이키라는 것인가?


주님이 오늘날 수많은 교회사람들에게『돌이키라』고 말씀한다면 『무엇을 돌이키라는 건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돌이킨다』는 말은 에피스트로퍼(be converted: 우리말로 회심이라고 번역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돌이키지 않으면 십자가에서 다 도망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는『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수님은『돌이키라』고 하는데, 베드로는 자신 만만한 것이다. 결과는 십자가 앞에서 도망이었다. 모든 교회 사람들이 살아있는 주님에 대해서는 목숨을 바쳐서 일할 수 있겠지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버림당하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붙드는 종류의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내속에 있는 악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자다. 그래서 악한 나도 죽은 자라고 고백하는 것이다.『나는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을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 앞에서 고백하는 자다. 


나는 예수를 죽인 자이고, 허물(세상죄)과 죄(원죄:악)로 하나님 앞에서 죽어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바로 거듭나는 자가 된다. 그래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가 된다. 내가 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십자가에서 다 도망가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자만 성령으로 거듭난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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