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태초(엔 아르케)에 말씀이 계시니라(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엔(~안에) 아르케(처음에, 첫번째에)는 엔과 여격명사가 결합되어 있어서, 시간적 태초가 아니라 첫째되는 분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베레쉬트(태초에)와 같은 개념이다. 첫째 되는 분은 바로 성도를 이끄는 호 로고스라는 말이다.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즉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로고스와 레마가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말씀은 레마이다. 그러나 심령 속에서 하시는 말씀은 로고스이며, 관사가 붙으면 호 로고스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로고스는 여성명사인데, 동사는 레고(말하다)이다. 엔(영어의 be동사)은 3인칭 단수 과거를 나타내므로 있었다 라는 것이다. 호 로고스가 있었다 라는 것이다. 어떤 호 로고스인가 하면 첫번째 되시는 분인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로고스는 다른 의미로서 이성, 지혜, 합리적인 생각, 그 생각의 외적으로 표현되는 말의 합성어라고 해야할 것이다. 당시 헬라인들은 이런 합리적인 지식을 통해서 로고스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로고스가 구원의 수단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로고스를 요한이 복음을 전하려고 헬라인에게 익숙한 로고스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관사인 호를 붙이므로, 복음의 말씀 속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 복음의 말씀은 성도의 심령 속에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시는 호 로고스라는 것이다.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된다.
구약성경에서 말씀은 창조의 수단이 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서 구원을 인간에게 알려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계시가 된다. 그래서 말씀으로 창조하는 가운데, 그 말씀이 곧 그리스도임을 계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곧 창조와 구원의 주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주신 율법 속에도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읽고 듣기는 들어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잠언 1장 7절에서는『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언 8장에서는 이 말씀이 지혜로 나타나고, 시편 14편에서는 지혜가 없는 사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라는 표현을 한다. 지혜있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이 로고스이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호 로고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1장 2절『그가 태초에(후토스 엔(ἦν) 엔(ἐν) 아르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프로스 톤 데온)』 후토스는 관계대명사로서 3인칭 주격 남성이다. 『그런데, 그는』 이라는 의미다. 엔(ἦν)은 있었다 라는 영어의 was와 같은 개념이다. 뒤의 엔(ἐν)은 ~ 안에 라는 의미로서 엔 아르케(ἀρχῇ)는 태초라는 시간 개념이 아니라 첫번째 되는 리더를 의미한다. 이 아르케는 1장 1절과 같은 개념이다.
1장 3절『만물(판타)이 그(아우투)로 말미암아(디)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코리스) 된(에게네토) 것이 없느니라』판타는 형용대명사 중성 복수로서 모든 것들이다. 아우투는 그의 라는 소유격이다. 디는 통하여 라는 의미다. 그리고 코리스는 영어의 without개념이다. 에게네토는 ~되게 했다라는 말로 영어의 become인데, 기본형이 기노마이이다. 즉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적으로 되게 한 것을 의미한다. 모든 만물이 그를 통하여, 그의 지으심이 없이는 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 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을 떠올리게 해 준다. 『태초에(베레쉬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베레쉬트는 헬라어 아르케와 같은 개념이다. 태초라는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우두머리라는 개념이다. 즉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로부터 물질세계(세상)를 분리해 내었다 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 )에서 상세한 설명이 있다.
1장 4-5절『그 안에 생명(조에)이 있었으니(호 게고넨 엔 아우토 조에 엔)이 생명(헤 조에)은 사람들의(톤 안드로포스) 빛(엔 토 포스)이라 빛(토 포스)이 어둠에(엔 테 스코티아) 비치되(파이네이) 어둠(헤 스코티아)이 깨닫지 못하더라(아우토 우 카텔라벤)』
조에는 관사가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는 생명이고, 헤 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호 게고넨 엔 아우토 조에 엔은 『그런데, 그 사람 안에서 되었던 그것은 생명으로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신도를 의미한다. 게고노멘은 그것은 되었다 라는 become의 3인칭 단수 과거 완료이다. 호는 중성 관계대명사인데,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특별한 빛(헤 조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엔 토 포스는 『그 빛으로』이다. 관사가 있으므로 특별한 빛, 특별한 사람(톤 안드로포스)을 의미한다. 특별한 사람은 성도를 의미한다. 번역을 다시 해보면 『호 로고스께서 비춰주는 그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그리스도)은 그 사람들(성도)의 빛이라.』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라고 했는데, 여기서 빛이 바로 특별한 빛(토 포스)인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므로서 그 빛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기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성도는 먼저 어둠에 있는 자신을 비추고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빛을 비추는 것이다.
엔 테 스코티아는 어둠 안에서 라는 의미다. 파이네이는 3인칭 단수 현재시제이다. 헤 스코티아는 그 어둠은 이라는 주격이다. 아우토는 그것(그 빛:예수 그리스도))을 이라는 의미로 목적격 대명사 중성이다. 우는 부정을 나타낸다. 카텔라벤은 카타(~을 따라서)와 엘라벤(받아들였다)의 합성어이다.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 받아드린 것을 의미한다. 즉 어둠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빛을 순간적으로 받아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둠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1장 6절『하나님께로부터(파라 데우) 보내심을 받은(아포스탈뤼메노스) 사람(안드로포스)이 있으니(에게네토)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오노마 아무토 요안네스)』파라 데우에서 파라는 옆으로부터 라는 의미다. 데우는 관사가 없으므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그와 함께 있는 자를 보내심을 받은 자가 되게 한 것이다. 에게네토는 되게했다는 말이다. 아우토는 여격인데, 개역개정은 소유격(그의)으로 번역했다. 여격은 동사를 수식하는데, 뒷부분의 문장(그의 이름은 요한이라)에서 be 동사는 생략되어 있다. 오노마 아무토 요안네스를 번역하면, 이름(오노마)은 그와 관계되는(아우토) 요한으로 존재했다(be) 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와 관계되는 자의 이름은 라고 번역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던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죄의 몸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도 이와 같이 그 영이 육체 속으로 들어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죄인도 아닌데,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감옥에 죄수복을 입고 들어간 것이다.
1장 7절『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투 포토스)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아우토) 말미암아(디) 믿게 하려(피스튜소신) 함이라』 투 포토스는 그 빛(말씀이신 그리스도)이다. 디는 ~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한글 개역개정은 아우토를 자기로 라고 번역하여 요한을 의미하고 있으나, 헬라어 성경에서 아우토는 그이다. 그(그리스도)를 디(통하여)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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