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한복음 1장 8절『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토 포스)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그는 세례요한을 의미한다. 토 포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1장 9절『참(토 알레디논) 빛(토 포스)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엔)』 토 알레디논은 진리로서,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엔 토 포스 토 알레디논』엔은 있었다는 의미인데, 한글 개역개정은 문장의 마지막 부분에 포함시켰다. 진리의 참 빛이 있었는데 라는 의미다. 진리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하늘로부터 오는 진리가 없는 것이다. 빛이 없는 어둠에 갇혀 있는 자인 것이다. 그런데,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고 있다는 말이다.
요한이 말하는 성육신은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야기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서 임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1장 10절『그가 세상(토 코스모)에 계셨으며 세상(호 코스모)은 그로 말미암아(디) 지은 바 되었으되(에게네토) 세상이 그를 알지(에그노) 못하였고(우크)』코스모는 우주이지만, 관사가 붙으면 세상을 의미하게 된다. 토 코스모, 호 코스모는 세상이지만, 성도를 의미한다. 『그(그리스도)가 세상에 있는 성도에 계셨으며, 세상에 있는 성도는 그(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은바(하나님 나라로) 되었으며』라는 의미가 된다. 디는 ~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에게네토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 되게 하시는 것이다. 에그노는 기본형이 기노스코로서 관계를 통해서 아는(히브리어:야다)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교회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심령 속에 임재하는 호 로고스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1장 11절『자기(타 이디아) 땅에 오매(에이스 엘덴) 자기(호이 이디오이)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타 이디아와 호이 이디오이는 자신의 것들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라고 번역된 아르케는 우두머리, 첫번째로서 이 말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앞에 있는 분이라는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입김을 흙에 불어 넣어서 첫사람 아담이 되었는바,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죄의 몸을 만들어서 악한 천사의 영을 가두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물질세계에 있던 첫사람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었다는 말은 첫사람 아담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이에 따라 타 이디아는 자신의 것들인데,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칭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을 전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말을 한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다.
에이스는 ~안으로, 엘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한다. 호 로고스께서 성도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시지만, 성도들은 임재를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호 로고스를 영접하는 것이다.
1장 12절『영접하는(엘라본 아우토) 자 곧 그 이름을 믿는(피스튜우신 에이스 토 오노마)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테크나 데우)가 되는(게네스다) 권세(엨소시안)를 주셨으니(에도켄)』엘라본 아우토는 그를 영접한다는 의미다. 엘라본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적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아우토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다. 영접하는 때는 성령세례를 받는 자를 의미한다. 에도켄은 그가 주신다 라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가 권세를 주신다. 권세라는 것은 왕이 총독에게 그 지역을 다스리는 법적인 권세를 준다는 의미다. 게네스다는 부정사로서 하나님의 자녀를 수식하며, ~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들에게 권세(하나님의 아들이 되는)를 준다는 것이다. 아들은 휘오스라고 하는데, 자녀와는 다른 개념이다. 다시 번역하면,『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게 그(그리스도)가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가 된다. 자녀가 되는 것은 권세가 아니라 은혜이다. 자녀는 믿음에서 아직 어린아이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이 되는 것은 권세를 받아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셔서 권세를 역사하시는 것이다.
피스튜우신 에이스 토 오노마는 그 이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단순히 예수의 이름을 부르거나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그것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고 부활하신 예수와 연합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1장 13절『이는(호이) 혈통으로나 육정(사르코스)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호이는 관계대명사 who와 같다. 이는 권세를 받은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다. 거듭난 자들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어린아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믿음이 자라서 심령 속의 호 로고스의 임재를 깨닫는 자에게 하나님이 아들이 되는 권세를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나 권세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 즉 성령으로 거듭난 자 중에서 택하여 아들이 되게 하신다는 말이다.
혈통은 유대인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진 그런 혈통이 아니고, 육정(사르코스)도 아니다는 것이다. 사르코스는 종교심을 의미한다.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 안으로 들어가 예수의 믿음이 되는 것은 다른 의미다. 단순히 예수를 믿는 것은 종교심으로 믿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뜻은 사람들이 자기 주관적으로 기준을 정해서 대상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장 14절『말씀(호 로고스)이 육신(사륵스)이 되어 우리 가운데(엔 헤민) 거하시매(에스케노센)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엘데아사메다) 아버지의(파라 파트로스) 독생자(모노게누스)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 분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성도가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다. 에스케노센엔 헤민은 우리(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텐트(심령 속에 성전) 안에서 라는 말이다.
엘데아사메다는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중간 디포테를 사용했다. 순간 자신이 자신 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의 영광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영광은 이 땅(성도의 몸)에 하나님 나라를 이룬 승리의 영광이다. 호 로고스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것이 바로 승리인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독생자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다. 파라 파트로스는 아버지 옆으로부터 라는 말이다. 아버지 옆에서 온 독생자이다. 모노게누스는 모노(홀로 하나)와 기노스코(~되다)의 합성어이다. 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을 의미한다. 그 분은 원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홀로 상속자가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즉 진리이신 호 로고스의 말씀을 따라 살게되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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