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요한복음 10장 1-2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디아)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에이세르코메노스)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아나바이온)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디아는 통과하여 라는 의미다. 에이세르코메노스는 중수디포테로서 의지를 써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아나(위)바이온(올라가다)은 하늘로 올라가는 의미다. 양의 문을 통과해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다른 문을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자는 다 도둑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양의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들이 진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싶은 거냐? 그렇다면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베푸는 구원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배워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그들에게 참된 목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렇게 일러주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어떤 목사를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자들도 있다는 말이다.
10장 3절『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에쿠에이)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너희들이 나를 어리석은 백성들의 지도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너희들이야 말로 도둑이자 강도와 진배없다. 너희들은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주 강한 어조로 바리새인들을 향해 날 서린 말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 표현은 9장의 맹인과 주님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준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떴다는 사실보다 그를 치료해준 이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에 더 격분했다. 그리고 급기야 맹인을 출교시키고 말았다. 그들은 맹인의 목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맹인은 자신을 고쳐준 주님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믿음을 시인하고 제자가 되었다. 맹인의 참된 목자는 주님이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했다.
양의 목자도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양의 문도 예수님이다. 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다. 에쿠에이는 현재시제로서 항상 듣는다는 의미다. 주님이 양들에게 항상 말씀하시고 그 양들은 항상 주님께 여쭈어보고 듣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의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인도하여 낸다는 것이다. 주님과의 관계가 되고 심령 속으로 주님이 들어오시면 그 분이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면 음성을 듣지 못한다.
10장 4-5절『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오이다신)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오이다신은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는 것이다. 주의 음성은 아주 미세하게 들리지만 그 음성을 기억하기 때문에 주의 음성을 판별하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귀로 듣는 그런 음성이다.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의 감동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10장 6-8절『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에무) 먼저(프로) 온 자는 다(호소이)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프로 에무는 내 앞에서, 호소이는 위대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외에 위대한 자로 온 자들은 다 도둑이요 강도라는 말이다. 위대한 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10장 9절『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디) 들어가면(에안 타스 에이셀데)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디는 통하여 라는 말이다. 에안 타스 에이셀데는 어렵지만 만일 누구든지 들어가면 이라는 것이다. 에안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지만 만일 이라는 의미다. 오늘날 구원은 너무 쉽게 보여진다.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라고 인식되었다. 구원을 받고 들어가며 나오며 라는 의미는 주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10장 10절『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조엔)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은 하늘의 생명,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10장 11-12절『나는 선한(호 칼로스)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호 칼로스는 가치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가도스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칼로스나 아가도스는 모두 선하다 라고 한글로 번역되고 있다. 거짓 목자들은 가치없는 목자들이다. 가치있는 일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이다.
10장 13-15절『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삯꾼은 교회 안에 있는 지도자들 중에 이런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양은 서로 하나가 된다. 서로 아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히브리어 야댜와 같이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
선한 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분명하다. 삯꾼에게 양은 자기 양이 아니다. 그저 양을 치고 삯을 받는다. 늑대가 오면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저 살기 위해 양을 버리고 달아나버린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다. 삯꾼을 삯을 위해 양이 필요하지만 참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이 있어야 함을 안다. 참된 목자와 양 사이에는 앎이 있다. 이 앎은 목자와 양간의 영적인 하나됨을 말한다.
10장 16절『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메시야에 대한 열망이 있는 자들 중에는 이런 자들이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교인들 중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자들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지 못했지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예수님을 찾아온 자들이다.
10장 17절『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아가파).』 아가파는 가치있는 사랑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일은 대속의 죽음과 새생명을 주기 위한 부활을 포함한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죽음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부활만을 강조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이유는 없어지는 것이다.
10장 18절『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권능도 성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권세라는 것이다. 이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스스로 결정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어서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이 땅의 영들을 살려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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