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10장 22-23절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겨울에 있는 이스라엘의 절기, 수전절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수전절은 예루살렘 성전 재봉헌을 기념하는 절기다. BC 167년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안티오쿠스4세는 이스라엘의 헬라화 정책의 일환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헬라 신전으로 바꾸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 율법이 부정하게 여기는 죽은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이로 인해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을 등에 업고 마카비를 중심으로 성전 탈환과 독립투쟁이 일어났다. 이는 3년후인 BC164년 성전탈환과 성전예배 회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 수전절 곧 성전 봉헌절이다.
성전을 거니는 것은 성전을 회복하는 분이 자신이라는 것을 나타내심이다. 성전회복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명절, 수전절에 예수님은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되시는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고, 절기만 지키는 것이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이방인의 뜰 영역 동쪽에 위치해 있다. 기둥들이 서 있고 지붕이 덮여져 있어서 성전에 들어오시면 예수님은 이곳에서 주로 사람들과 대화 나누시고 말씀을 가르치셨다. 이곳은 이방인들의 출입이 가능한 영역이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이방인이라도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성전에 오시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곳에 자주 들리셨다. 예수님 승천후에도 사도들과 믿는 자들이 함께 모였던 장소이기도 했다.(행5:12)
10장 24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에이 쉬 에이 호 크리스토스)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에이 쉬 에이 호 크리스토스는 『당신이 그리스도같이 보이는데,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의미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생각했지만, 완전하게 믿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다.
10장 25-26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이 보내시는 자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복음의 증인으로 예수님으로 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는 다 사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도적인 사명을 갖는 자가 성령세례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나아갈 때 사도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은 만인 제사장의 시대로서, 모든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고 사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완전하게 믿는 것이다.
10장 27-28절 『내 양(타 프로바타 타 에마)은 내 음성(테스 포네스 무)을 들으며(아쿠우신) 나는 그들을 알며(기노스코)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아콜로두신)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타 프로바타 타 에마는 나의 그 양이다. 테스 포네스 무는 나의 그 음성이다. 주님의 양들은 주님의 그 음성을 들으며, 주님이 그 양을 알며, 양은 그를 따르는 것이다. 기노스코는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 아콜로두신은 옆에서 따르는 것이다. 주님의 양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가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양이 되면 주님은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10장 29-30절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성부 하나님이 만물보다 크시다 라고 말을 하신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혀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목사가 교회의 중심에 있는 경우가 많다. 교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상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되면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10장 31-32절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였음에도 당신들이 믿지 않는다고 분명히 답변하셨다. 그 답변을 들은 에워싼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혔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신성모독으로 여겨 돌로 쳐 죽으려고 하였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는데 예수님의 대답에 대한 반응으로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 질문은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함정이요 질문으로 위장된 덫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을 명분화 하기위한 덫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시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시 돌을 들어 치려하였다』
수전절로 부터 약 3개월 전인 초막절 명절에도 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하였다고 요한복음 8장 59절에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에워쌌던 일련의 유대인들의 질문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덫이었다.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명분은 신성모독이었다. 하나님이 친히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이려고, 미리 덫을 꾸며놓고 그 죽음의 명분을 하나님의 이름에서 빌려오는, 인간들이 바로 당시 예수님이 사시던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다. 자신들이 정해놓은 종교적 규율과 제도를 가지고 이미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정죄해 놓고 그 유죄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덫을 쳐 놓았던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의 차이가 이렇게 되는 것이다.
10장 33절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칼루 에르구)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에루구(일) 칼루(가치있는)는 가치있는 일이다. 가치있는 일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표적과 기적이다.
10장 34-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호 로고스)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율법은 출애굽기 7장 1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데오이 에스테) 하였은즉 네 형제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데오이 에스테는 신들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을 받은 자는 모시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호 로고스를 받은 자들은 신이라 칭함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호 로고스의 능력으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이다. 성경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이런 말을 듣는 자들은 아마도 이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단들은 자기들만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성도이면 누구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면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10장 36절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휘오스 투 데우)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차원에서는 호 휘오스 투 데우(하나님의 그 아들)를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는 관사 호가 빠져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 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0장 37-39절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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