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요한복음 12장 12-13절『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많은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배웅하러 나왔다. 그리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기쁨의 함성을 외쳤다. 그들은 저마다 호산나를 외쳤다. 호산나는 『구원하소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통치로부터 해방되고자 하였고 그들의 숙원을 이룰 왕을 찾았으며 정치적인 자유를 외쳤다. 따라서 그들이 원하고 기다렸던 영웅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아 자신들을 통치하며 로마로부터 구원해낼 자였고 그들이 본 예수님이 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셨다. 오천 명을 먹이신 것과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주님의 기적 가운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마치 자신을 해방시킬 마법과도 같은 하나님의 강한 힘이었다. 하나님의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영웅, 그것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12장 14-16절『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휴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휴론은 발견하다 라는 의미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그들이 보고 들은 기적은 전투마를 타고 입성하는 마치 하나님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는 힘 있는 장군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힘으로 자신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로마 병정을 단번에 무너트릴 천상의 칼을 소유한 영웅을 바라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원하는 영웅의 모습을 이해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 바로 이 땅에서의 사명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계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망하는 왕좌의 자리에 관심조차 없었고, 민족주의에 불타오르는 그들의 갈망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양의 모습으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스가랴 9장 9-10절의 예언이 이루어짐을 언급한다.”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영웅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유월절을 기다리고 계셨다. 모세 시절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기 이전에 장자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인 유월절을 맞아 주님께서는 얼마 있지 않아 스스로가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실 운명이심을 아셨던 것이다. 이미 주님께서는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려 발을 씻음으로 장례준비도 마친 상태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적군을 향해 진격하실 장수요, 자신들을 구해낼 전쟁의 영웅으로 바라보았다. 따라서 승리의 왕을 맞이하며 승전가를 부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성을 외친 것이다. 


12장 17-18절『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예수님이 보여주신 표적과 기사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으며,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라 온 것이다. 표적과 기사가 복음의 전파에 대단히 중요한 것을 알려주신다. 


12장 19절『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런 표적을 보여주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었다. 오늘날도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면 믿지 않을 것이다. 


12장 20-22절『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방인들에게까지 이어진다. 그 예표로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뵙고자 찾아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반드시 돌아가셔야만 했다. 그러하여야만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유대인들과 모든 이방인이 죄로부터 해방되어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언약의 완성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가장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이며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이다. 


갈릴리 벳세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직접 찾지 않고 빌립에게, 빌립도 안드레에게 말하고 빌립과 안드레가 예수님에게 다시 가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벳세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직접 나아가기가 마음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직접 나아가기가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직접 나아오기를 기다리신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성도들이 직접 그 분에게 나아와서 친구처럼 대화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12장 23-24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호 콕코스 투 시투)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구속 사역인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호 콕코스 투 시투는 그 밀의 그 한 알이 라는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한다. 


12장 25절『자기의 생명(프쉬켄)을 사랑하는(필론)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조엔)하도록 보전하리라』프쉬켄은 혼이다. 사랑하는 것을 아가페라는 단어가 아니라 필론(필로스)을 사용했다. 아가페는 가치에 대한 사랑이지만 필로스는 관계를 통한 사랑이다. 부모 형제 친구 등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은 육적 옷과 같은 것으로 목숨(생명)으로 번역되었다. 조엔은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예수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라는 것은 혼을 의미하며, 혼의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말씀이신 호 로고스의 마음을 받아드리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12장 26절『사람이 나를 섬기려면(에안 에모이 티스 디아코네 에모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호 디아코노스 호 에모스)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디아코네(섬기는 것)는 사역이라고 한다. 에안 에모이 티스 디아코네 에모이는 “만일 나와 관련해서 누구든지에게 섬기려 한다면” 라는 의미다. 호 디아코노스 호 에모스 역시 나(예수님)의 그 섬기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 교회 사람들은 누구를 섬기는가? 성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것과 마찬가지로 섬기는 것이다. 섬기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 사역이다. 섬김은 성도가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자에게 전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목사는 신도들을 섬겨야 하는데,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들이 목사를 섬기는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교회의 성도가 교회에 나온 초신자들을 섬기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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