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장 15절『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엔트라스)을 지키리라』 엔트라스는 명령이다. 개역개정에는 계명으로 되어있다. 마치 율법적인 느낌을 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언제까지나 함께 계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명령을 지키리라』 명령은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3:34-3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이 말씀은 영에 대한 말씀이다. 죽어 있던 영이 살아나서 거듭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웃의 영을 살리는 것이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온 인류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사랑이전에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아무 사랑도 아닌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랑도 공허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당부하시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되어 그 분의 십자가가 성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14장 16-17절『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알론 파라클레로톤)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알론은 약간 다른 것이고 파라클레톤은 옆에서 돕는 분이라는 의미다. 보혜사가 있는데, 또 다른 보혜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보혜사가 두 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분인 것이다.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을 의미하며, 원래의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즉 예수님이 세상에 있으면서 보혜사 역할을 했지만,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시겠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시게 되었다. 예수님은 체포당해야 하고, 십자가에 달려야 하고, 무덤에 들어가야 하고, 그리고 부활하고 승천해야 한다. 이제 잠시 후면 제자들이 지금까지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는 없게 된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도 당황스러웠지만,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시간과 공간의 활동에 제약을 받았지만,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때는 제자들이 활동하는데 더 큰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은 내주하시는 성령과 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나뉘어진다. 같은 성령이지만 역사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나게 하는 분은 내주하시는 성령이시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오순절 다락방에서 임하셨던 성령은 위에서 역사하시는 보혜사 성령으로서 복음을 전하는데, 증거하게 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사역자들을 위에서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하신다. 보혜사 성령은 떠나기도 하시고 다시 오시기도 하신다.
14장 18절『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호 로고스(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14장 19절『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보지 못할 것이나, 제자들은 보게된다는 것이다.
14장 20절『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삼위일체의 신앙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서로 성령의 능력으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4장 21절『나의 계명(타스 엔틀라스)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타스 엔틀라스는 그 명령들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사랑이라는 아가페는 가치에 대한 사랑이다. 가치는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14장 22-23절『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아가파) 내 말(톤 로곤)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톤 로곤은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런 성도는 주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고 그 사랑을 행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것은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으로 거처를 옮긴다는 엄청난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심령 속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임재하시며, 그곳은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게 되기 위해서는 호 로고스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간직한다)는 말이다. 호 로고스의 말씀은 사랑이시다.
14장 24절『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투스 로구스)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호 로고스)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투스 로구스와 호 로고스는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듣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4장 25-26절『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보혜사 성령은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고 증거하신다.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고 이끌어주시고 도와 주시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사역자들은 보혜사 성령을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14장 27절『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성령이 함께 하므로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14장 28절『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예수님은 성부 하나님 우편 보좌에 갔다가 다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신다. 그래서 이 말을 아는 자들은 오히려 기뻐할 것이다. 육체적으로 오신 예수님보다. 심령 속으로 들어오시는 호 로고스는 더욱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육체의 한계로 인해서 제한을 받지만, 호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는 제한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14장 29절『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예수님이 미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령세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성령의 역사를 오히려 이상하게 바라보는 일이 있는 것이다.
14장 30-31절『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교회 안에서 세상 임금을 추종하는 자들에게는 주님은 상대하지 않으신다. 오직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이런 큰 비밀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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