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한복음 16장 1-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6장 1-2절『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주위에 있는 신자들이 비방하고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오늘날도 종교화된 교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싫어하신다. 이렇게 하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6장 3절『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에그노산) 못함이라.』에그노산은 기본형이 기노스코이다. 이 말은 히브리어 야댜와 같은 말로서 관계를 통하여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직 지식으로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식으로 아는 자들은 결국 종교화된 신앙인이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싫어하는 것이다.
16장 4절『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는 이런 것이 필요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면 다른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게 된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황하지 말고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16장 5-6절『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에로타)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묻다의 헬라어는 에로타오와 아이테오가 있다. 에로타오는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을 의미하고, 아이테오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주로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다. 에로타는 제자가 예수님을 친구처럼 묻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에로타로 묻지도 않지만, 실은 아이테오로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16장 7절『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히나)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쉼페레이)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파라클레이스)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히나는 ~의 결과(so that)로서 라는 의미다. 쉼페레이는 쉼(함께)과 페레이(장소를 옮기는 것)의 합성어이다. 너희와 함께 내가 옮기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즉 심령 속에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삼위로 역사하신다. 보좌의 하나님과 성도의 심령 속에서 관계를 맺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를 이끄시는 성령이시다.
16장 8-9절『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심판(크리세오스)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보혜사』라는 말은 요즘 사용하지 않는다. 보호하시고 은혜스러우며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헬라어로 파라클레이토스『파라』는 『곁에』라는 말이고 클레이토스는 곁에서 『말하는 분』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이 땅에 부어져 있다. 진리의 영이 옆에 있다는 뜻이다.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말씀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저희(세상)가 나(예수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유대인들이 말하는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죄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세상죄를 다 짊어지고 가셨고, 그 분이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와서 역사하시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한다.
16장 10절『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구약시대에 의는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세상죄를 다 가지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가셨으며 성도의 심령 속으로 임재하신는데, 이와 같은 것을 구약과 비교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동물을 죽인 피를 가지고 지성소까지 나아가야 했으며,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셨던 것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를 흘리시고,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역할을 하시고,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셔서 성도의 머리가 되는 것을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역할을 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앉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도 그와 함께 앉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의가 되는 것이다.
6장 11절『심판(크리세오스)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케크리타이)』 크리세오스는 판단이다. 케크리타이는 판단되어진다는 의미다. 완료시제 수동태이다.『세상 임금(통치자)이 성령에 의해 판단되어진다』라고 한다. 모든 통치자들도 성령에 의해 판단되어지나, 대부분 통치자들이 성령의 판단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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