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

요한복음 8장 1-2절『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유대 종교 지도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시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게 되지만 결국 예수님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무리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들의 아랫사람들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도 감람산으로 가셨다. 감람산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제자들과 습관을 따라 그 감람산에서 기도하러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머무시고 다음날 다시 성전으로 가셔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을 끌고 예수님 앞에 나왔다.


8장 3-5절『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온 목적은 정말 여인의 음행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답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저의가 있는 질문이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잡혀온 여인을 긍휼히 여기시면서 그 여인을 놔주도록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면서 어떻게 율법도 따르지 않느냐고 예수님을 비난할 것이었고, 반면에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율법에 따라 돌로 치라고 하셨다면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사형 선고는 스스로 하지 못하도록 한 로마의 법을 어기게 되어 이 또한 예수님이 공격 당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대답이었다. 


8장 6절『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시더라도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함정을 준비하여 예수님께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엎드려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다. 이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의 대답을 촉구하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 지도자들 눈에 음행하다 잡힌 이 여인은 예수님을 잡아드릴 좋은 미끼가 될만한 사람으로, 죄를 지은 불결한 여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사람들의 눈이 그 여인이 아닌 그 일을 행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셨고, 잠시 후 그 자리에 있던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 둘씩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여인의 죄를 바라보았을 때 율법에서 말하는 것처럼 돌로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여겼지만 막상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보게 되었을 때 그 누구도 자신의 죄에 대해 감히 자신이 의롭다고 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땅에 쓰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울리도록 하신 것이다. 


8장 9절『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아쿠산테스) 양심(쉬네이데세오스)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헬라어 성경 중에는『양심에 가책을 느껴』라는 부분에 차이가 있다. 스테파누스 성경은 포함되어 있으며,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빠져있다. 개역개정과 스테파누스 성경에도 약간의 번역상 차이가 있다. 양심이라고 번역된 쉬네이데세우스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마음이다. 그들이 말씀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 안에서 듣고 나갔다는 것이다. 아쿠산테스는 음성을 듣다 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마음에 울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땅에다 글을 쓰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스테파누스 성경)


οι δε ακουσαντες και υπο της συνειδησεως ελεγχομενοι εξηρχοντο εις καθ εις αρξαμενοι απο των πρεσβυτερων εως των εσχατων και κατελειφθη μονος ο ιησους και η γυνη εν μεσω εστωσα『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들 자신의 마음에 의해 어른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사람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넷슬 알란드 성경)


οἱ δὲ ἀκούσαντες ἐξήρχοντο εἷς καθ’ εἷς ἀρξάμενοι ἀπὸ τῶν πρεσβυτέρων καὶ κατελείφθη μόνος καὶ ἡ γυνὴ ἐν μέσῳ οὖσα.『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어른으로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분석)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자신의 마음에 의해 라는 부분과 마지막 사람까지 라는 부분이 빠져 있다. 그러나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이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이 그들 자신의 마음에 울리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으로 이 내용이 빠져버리면 의미가 퇴색된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울리는 것이 모세가 전한 율법 보다 위에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스테파누스 성경을 따라 해석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킹제임스 번역도 스테파누스의 성경을 따라서 번역되었다. 


8장 10절『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카테고로이 κατηγοροι)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스테파누스 성경에는 카테고로이가 있지만,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빠져있다. 그리고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에서도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빠져있다. 말씀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테파누스 성경)


ανακυψας δε ο ιησους και μηδενα θεασαμενος πλην της γυναικος ειπεν αυτη η γυνη που εισιν εκεινοι οι κατηγοροι σου ουδεις σε κατεκρινεν『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는 아무도 없느니라』


(넷슬 알란드 성경)


ἀνακύψας δὲ ὁ Ἰησοῦς εἶπεν αὐτῇ· γύναι, ποῦ εἰσιν; οὐδείς σε κατέκρινεν;『예수께서 일어나사 이르시되 여자여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는 아무도 없느니라』


(분석)


스테파누스와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이 부분이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빠져 있는데, 한글 개역개정에는 스테파누스 성경을 따라 번역되었다. 이는 스테파누스 성경을 직접 번역했다기 보다는 킹제임스 성경과 NIV성경을 동시에 보면서 번역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킹제임스 번역이 오히려 내용이 충실하게 적용되므로 이를 따랐을 것이다. 


8장 11절『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정죄하러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죄에 빠져있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은 죄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죄 지은 죄인이라고 비난하던 음행한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죄의 대가를 묻지 않으시고, 그녀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음행한 여인은 범죄 현장에서 잡힌 사람이다. 하지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아직 범죄 현장에서 발각되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음행한 여인과 크게 차이 없는 죄인이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