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장 12절『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지만, 진리의 성령께서 성도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16장 13절『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진리의 성령께서 제자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신다. 십자가 만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것은 진리의 성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인지 아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성도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성도를 깨닫게 해 주신다. 호 로고스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셔서 성도와 더불어 교제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16장 14절『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성도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것이다.
16장 15절『무릇 아버지(성부)께 있는 것은 다 내(그리스도)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성령)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역하시고,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사역하신다.
16장 16절『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성령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 애매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특히 『조금 있으면』, 곧 『잠시 후면』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데,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잠시 후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일이 일어났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던 그때로부터 잠시 후에 우리가 죽음과 부활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알았고, 잠시 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알고 있듯이, 인생의 시간이 길어도 긴 것이 아니요, 기다림의 순간이 긴 것 같아도 긴 것이 아님을 알고, 끝까지 살아계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말씀과 함께 인생길을 가는 것이다.
16장 17-18절『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것 자체를 받아드릴 수 없었기에, 예수님이 승천해 가시고 성령께서 오시고 하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냥 종교적인 학습을 통해 주입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심령 속에서 만나서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그 분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셔서 만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이유를 알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은혜와 비밀을 알고, 죽음에서 다시 사시고 승천하시고, 성도의 심령 속으로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아는 것이다.
16장 19절『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특히 『조금 있으면』, 곧 『잠시 후면』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데,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잠시 후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일이 일어났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던 그때로부터 잠시 후에 우리가 죽음과 부활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알았고, 잠시 후에 예수님이 다시 성도의 심령 속으로 오심을 알고 있듯이, 인생의 시간이 길어도 긴 것이 아니요, 기다림의 순간이 긴 것 같아도 긴 것이 아님을 알고, 끝까지 살아계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말씀과 함께 인생길을 가는 것이다.
16장 20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기쁨과 응답에 대한 말씀이다. 마침내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너희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상실과 절망이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 고통이었을 것이고 근심과 두려움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수님은 제자들의 큰 의지였고 기대였고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에수님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러기에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용기와 약속을 주신 것이다.
16장 21-22절『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시면 여자가 해산해서 아기를 낳을 때의 기쁨처럼 그렇게 여겨질 것이다.
16장 23절『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에로테세테)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아이테세테)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그날은 재림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이 그 날에는 에로테세테로 묻지 않고 아이테세테로 묻는 것이다. 에로테세테는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이고, 아이테세테는 권위가 높은 자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16장 24절『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에테사테) 아니하였으나 구하라(아이테이테)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지금까지는 묻지 않았으나, 심령 속에 호 로고스를 믿으면 주님이 심령 속에서 다 알려주신다. 구하라는 말은 물어봐라는 것이다.
16장 25절『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때라는 것은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때를 의미한다.
16장 26절『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엔 토 오노마티) 구할 것이요(아이테세스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에로테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엔 토 오노마티는 내 이름 안에서 라는 의미다. 아이테세스데는 여쭈어 보다라는 의미다. 에로테스는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친구에게 물어보듯이 그렇게 하지 않고, 아이테오로 물어본다는 것이다.
16장 27절『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예수님의 가치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님의 가치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와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이로게 하는 것이다.
16장 28-29절『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한 것이다.
16장 30절『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에로타)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에로타는 친구들간의 질문으로 주님은 친구들 간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이테오의 질문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기 위한 것과 관계되는 질문이다.
16장 31-32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피스튜에테) 보라 너희가 다 제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피스튜에테는 믿는다 라는 의미지만, 여기서는 너희가 나를 믿는다고 라는 반문적 의미가 된다. 제자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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