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1장 3절.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אֹ֑ור וַֽיְהִי־אֹֽור׃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개역개정)

하나님이 빛이 있으면 좋겠다 하시매 빛이 존재하게 되었고 (수정안)

문장을 분석해 보면 “와요메르 엘로힘 / 예히 오르 / 와예히 오르”에서 와요메르 엘로힘은 하나님이 말했다는 것이다. 


“예히 오르”에 대해서 개역개정에서는 빛이 있으라 라고 번역했다. 명령문이다. 그러나 예히의 기본형은 하야(be동사)인데, 예히는 동사 미완료 남성 단수이다. 명령문이 아닌 것이다. 명령문은 명령을 받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대상이 없는데, 명령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완료와 미완료시제가 있는데, 완료는 어떤 일이 완성된 것을 표현하고 미완료는 그렇지 못한 상태를 표현한다. 빛이 있으라 라는 말이 아니라, 빛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피력하신 것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시는 것이 마치 삼위 하나님이 서로 의논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와예히 오르”는 와(그리고) 예히 오르 즉 빛이 존재하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오르(אֹֽור)에서 오에 해당하는 글자אֹֽ는 접와이고 와(그리고) 예히에서 예히는 동사 미완료 남성 단수이다. 그래서 두 단어를 합하여 와우전환 미완료형에 해당된다. 와우전환 미완료형은 현대 히브리어에는 없는 문법이다. 미완료이지만 어느 순간 결정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헬라어의 아오리스트 시제와 비슷하다. 삼위일체의 입장에서 성부 하나님이 창조주에게, 창조주는 성령에게 빛이 있으면 좋겠네 하므로 성령께서 빛을 만드셨으며, 순간 빛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장 3절에서의 빛과 하나님 나라의 빛은 다르다. 하나님 나라는 어둠이 없는 빛이다. 요한1서 1장 5절『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그러나 세상의 빛은 어둠을 전제로 하는 빛이다. 빛이 가려지면 어둠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세상은 흑암이었다. 흑암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해주셨다. 이 빛은 물질의 빛이다. 그래서 이 빛은 하나님의 빛이 아니다. 


하나님은 왜 하나님의 빛을 비춰주시지 않고, 물질의 빛을 세상에 비추게 하셨는가? 빛은 어둠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가면 어둠이 온다. 그래서 빛과 어둠은 함께 하지 않는다. 빛은 세상에서 생명이 자라고 유지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그러나 이 빛은 하나님이 주신 영의 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빛이다. 그래서 이 빛은 참 빛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세상의 빛을 창조하셨는가? 세상이 어둡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물질 세계는 하나님의 빛이 차단되어서 이루어진 공허하고 흑암이 가득한 곳이였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빛을 창조하셔서 어둠을 밝혀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빛을 창조하신 목적은 언젠가 세상에 참 빛을 비춰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다. 이 세상은 창조되었을 때 흑암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빛이 있으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 세상의 근원은 어둠이라는 것이다. 단지 빛이 올 때만 빛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조금도 어둠이 없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시면 어둠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요한계시록 21장 23-25절에서『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성은 새 예루살렘을 말하며, 새하늘과 새땅이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서는『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 세상은 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위에 성령께서 알을 품듯이 감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을 차단하시고, 물리적인 빛을 창조하셔서 어둠을 밝히셨다. 물리적인 빛은 하나님의 약속(참빛)을 담고 있다. 그런데, 참 빛이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 요한복음 1장 9절에서『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참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참빛을 비춰주시면, 이 세상에 범죄한 영을 가둔 목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듯이 참빛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이 드러나면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여기서 사도바울은『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말씀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나타낸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3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이며, 창세기 1장 3절의 말씀은 곧 회개하는 자의 마음에 비춰주시는 하나님의 영광,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으면서 어둠 속에 갇혀있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떠난 존재라는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빛을 비춰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흑암의 세상에 빛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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