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장 4절

 וַיַּ֧רְא אֱלֹהִ֛ים אֶת־הָאֹ֖ור כִּי־טֹ֑וב 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개역개정)


하나님이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 빛 사이에서 그리고  그 어둠 사이에서 구별하사 (수정안)


개역개정에서는 주어가 마치 빛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킹제임스(kjv) 영어성경을 보면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niv에서도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주어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 빛을 보았다(와야르). 영어의 saw에 해당되지만, 단순히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을 의미한다. 역시 문법적으로 와우전환 미완료 동사이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보았던 것이다. 와야르(ַיַּ֧רְא) 동사를 보면 와우(갈고리), 요드(손), 레시(머리), 알렙(하나님)의 연결 단어로서, 머리되시는 하나님이 손안에 무엇인가를 두고 못을 박는 것이다. 못을 박는 것은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세히 보는 것이다. 


그 빛(הָאֹ֖ור 하오르)은 앞에서 언급한 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빛이라는 것이다. 어두움(הַחֹֽשֶׁךְ하호세크)은 생명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빛과 어둠에서 관사(와우)가 붙으면, 특별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키(כִּי־)는 접속사이지만, 왜냐하면 이라고 번역된다. 개역개정에는 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빛을 보신 이유는 그 빛이 좋았기(토브טֹ֑וב)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에서 나누는 것을 와야베델(וַיַּבְדֵּ֣ל)로 표현했다. 와야베델은 사역 능동 동사이다. 하나님이 구별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강조의 의미를 갖는다. 히브리어 원어에는 그 빛 사이에, 그 어두움 사이에서 구별했다는 것이다. 벤(בֵּ֥ין)은 영어의 between이다. 개역개정은 빛과 어두움 사이를 구별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원어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즉 생명을 살리는 그 빛과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그 빛을 구별했으며, 생명의 빛이 필요한 어둠과 그렇지 못하는 어둠을 구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목하는 빛과 어둠은 생명과 관계되는 것이다. 


빛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흑암의 세계에 빛을 주시면서 언젠가 참 빛이 이 세상에 오시겠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물질의 빛이 세상을 비추듯이, 하나님의 참빛이 오셔서 죽어 있는 영에게 비춰 살리시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빛은 온 세상을 동시에 밝혀주지 못한다. 빛이 가면 어둠이 오고,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간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왜 빛과 어둠을 나누셨는가? 이 말씀은 물리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참빛이 세상에 오시면, 참빛에 들어가는 사람과 어둠에 있는 자들로 나뉘어진다 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5절에서『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과 밖에 있는 자들로 나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만 한다. 


요한복음 3장 19-21절에서『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참빛에 있는 자들은 영생이 있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영생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가나안(그리스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옛사람이 죽어야 함을 알려주신다. 곧 옛사람은 자기라는 육적인 정체성(혼)을 말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이 말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을 계획하신바 된 것이다. 이것이 은혜다. 사람들은 어둠가운데 있지만 어둠가운데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해와 달이 만들어지기 전인데, 어떻게 빛과 어둠을 나눌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한다.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평가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하나님이 왜 이렇게 밤과 낮이 있게 하셨는가? 이 세상의 시작은 어둠에서 시작되었다. 빛이 항상 있으면 어둠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빛이 있게 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빛이 없는 때는 저절로 어둠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들은 빛이 없는 어둠에 갇혀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둠에 있지만 반드시 빛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다. 어둠에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빛으로 찾아오실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서 1장 19-20절에서『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어둠가운데 있는데, 빛이 오게된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진리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둠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먼저 빛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빛 같은 존재인데, 어둠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빛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다. 사탄에 미혹당하여 살고 있는 모습이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사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