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1장 11-12절

. וַיֹּ֣אמֶר אֱלֹהִ֗ים תַּֽדְשֵׁ֤א הָאָ֨רֶץ֙ דֶּ֔שֶׁא עֵ֚שֶׂב מַזְרִ֣יעַ זֶ֔רַע עֵ֣ץ פְּרִ֞י עֹ֤שֶׂה פְּרִי֙ לְמִינֹ֔ו אֲשֶׁ֥ר זַרְעֹו־בֹ֖ו עַל־הָאָ֑רֶץ וַֽיְהִי־כֵֽן׃


וַתֹּוצֵ֨א הָאָ֜רֶץ דֶּ֠שֶׁא עֵ֣שֶׂב מַזְרִ֤יעַ זֶ֨רַע֙ לְמִינֵ֔הוּ וְעֵ֧ץ עֹ֥שֶׂה פְּרִ֛י אֲשֶׁ֥ר זַרְעֹו־בֹ֖ו לְמִינֵ֑הוּ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하나님이 이르시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개역개정)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씨없는 채소와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수정안)


땅이 양식을 세가지를 낸다. 풀(데세 דֶּ֔שֶׁא), 채소(에세브 עֵ֚שֶׂב ), 나무(에츠 עֵ֣ץ)이다. 풀은 이사야 40장 7절에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 말씀에 비유되는 풀이지만, 창세기 1장 11절에서 말하는 풀은 막 싹이 난 연약한 풀이다. 이 풀은 동물과 관련이 있다. 창세기 1장 30절에서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에세브 עֵ֚שֶׂב )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개역개정에는 풀이라고 번역되었으나, 히브리어 원어에는 에세브라고 되어있다. 에세브는 채소이다. 따라서 짐승도 풀 뿐만 아니라 채소인 에세브를 먹는다는 것이다. 짐승이 먹을 수 있는 에세브에는 제라( זֶ֔רַע  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즉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씨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특히나 모든 짐승과 모든 새가 풀을 먹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날 짐승을 보면 육식을 하는 것들이 많다. 이는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전도서 3장 21절에서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개역개정)” 개역개정에서 히브리어 루아흐를 혼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영이다. 즉 사람의 영은 위로 가고 짐승의 영은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짐승은 문자 그대로 짐승일 수 있고, 거듭나지 못한 인생, 하늘의 생명이 없는 존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1절에서 말하는 짐승은 씨가 없는 풀(채소를 포함)을 먹는데, 이는 영적으로 약속의 생명이 없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출애굽하지 못한 애굽 백성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채소(에세 עֵ֚שֶׂב)에 대해서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에세브는 풀과 차이가 있는 것이 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 곧 약속을 가진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채소는 씨를 가지고 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씨는 곡식으로서 떡으로 표현된다. 가나안에서 먹는 열매는 포도주로 표현된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나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다. 결국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마지막 성찬때 등장한다. 떡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살로, 포도주는 피로 상징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생명의 말씀과 언약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씨와 열매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1서 5장 11-12절에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즉 약속의 씨가 있는 자에게는 하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씨맺는 채소와 씨맺는 나무의 차이는 열매를 맺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채소는 씨만 있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결국 잘려나가는 나무가 된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은 초등학문에 이르는 아이처럼, 하늘로부터 나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약속의 씨에 대한 말씀을 듣고 교회에 나왔지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는 말이다. 단지 들어서 지식으로 아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씨맺는 나무와 씨맺는 채소를 통해서, 인간이 씨를 뿌리고 경작해서 양식을 얻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해마다 씨를 뿌려서 열매를 거둔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창세기 3장 23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하나님은 매년 씨를 뿌리고 경작하면서 깨달아라는 것이다. 무엇을 깨달아라는 것인가?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매년 씨를 뿌리고 경작하면서 살다보면 나이가 들고 결국 죽게된다. 이 양식은 영원한 양식이 아님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인간이 반드시 죽어야 할 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를 성경은 말한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서『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씨뿌리는 비유는『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오사 흑암에 갇혀 죽는 인생이 되었는데, 영생하도록 하기 위한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세상의 옷을 벗어버리고 영생을 위한 옷(그리스도)을 입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세상의 옷을 벗는 것이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연합됨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믿음으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와 함께 장사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에덴동산으로부터 쫒겨 세상으로 나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로 대체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사탄의 미혹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므로 하나님 나라로부터 쫒겨 세상으로 들어왔다. 창세기 3장 24절에서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그룹(cherub)들은 천사를 말한다. 그룹은 지성소 법궤를 덮고 있는 두 천사들이다. 법궤 안에는 율법인 두 돌판과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있었다. 천사는 율법을 상징한다. 불칼은 성령을 의미하신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려면 불칼에 맞아 죽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에 의해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입지 않으면 생명나무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흑암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참빛을 비춰서 어둠으로부터 나오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어 들이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는 그 진리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나님이 좋았다 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이 세상에 와서 씨뿌리고 열매를 거두어들이지만, 결국은 죽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알게되므로 회개하여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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