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과 예언
교회사람들 대부분은 방언에 대해서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결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히브리어 외에 다른 나라의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던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인, 가바도기아인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디아스포라들이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던 것이다. 사도행전 2장 11절에서는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이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방언을 말할 때, 반응이 두가지인 것이다.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지역의 출신들인데, 어떻게 이런 외국의 말들을 하는가 라는 것이다. 방언은 외국어라는 의미를 갖는다.
둘째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이 제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큰 일을 들어보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술취했는가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말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다는 이야기 이며, 영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당시에는 정말 술취한 자로 취급받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서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요엘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서 설명해주었다.『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말한 것의 핵심은 여러 나라의 언어인 방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큰일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회피해 버린다. 그래서 복음이 마치 외국어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게 방언인 것이다. 외국어가 되어버리는 복음은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개인적으로 신앙의 도움이 된다. 그리고 방언처럼 들리는 복음을 전할 때, 통역하는 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할 때 어려운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성령이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어처럼 느껴지는 복음은 비록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지만, 성령에게 하는 말이며,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 된다. 성령을 거부하는 자는 죄의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예언은 하나님의 큰 일에 관한 복음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신도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대부분 교회 목사들이 교리를 바탕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깨달아 전하는 것이 참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큰 비밀을 알게 된다. 이게 바로 예언인 것이다. 예언은 개인의 길흉사를 점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제대로 전하는 것이 바로 예언인 것이다.
방언과 예언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에게 하는 것이고, 예언은 믿는 자에게 하는 복음인 것이다. 대상이 다를 뿐 같은 이치에 있는 복임인 것이다. 오늘날 방언을 “라라라라” 라고 하는 자들은 성경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인 것이다. 신도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참 진리를 깨달아야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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