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7 9-14

 

17:9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יֹּ֤אמֶר אֱלֹהִים֙ אֶל־אַבְרָהָ֔ם וְאַתָּ֖ה אֶת־בְּרִיתִ֣י תִשְׁמֹ֑ר אַתָּ֛ה וְזַרְעֲךָ֥ אַֽחֲרֶ֖יךָ לְדֹרֹתָֽם׃

언약을 지키다(티쉬모르 תִשְׁמֹ֑ר 기본형은 샤마르) 라는 말은 수호하다 라는 의미다. 언약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 모든 인간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약은 할례를 통하여 언약이 이루어짐을 표현되었다. 율법과 복음이라고 말을 할 때, 율법은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죄로부터 인간은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을 바라보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 속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속에 생명나무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0 1절에서『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참 제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 바로 참 제사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내가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죽은 자가 될 때 곧 죄가 사해짐을 얻는다. 로마서 6 7절에서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죽은 자가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산 자로 만들어주신다.

할례는 영원한 언약이다. 할례는 육을 베는 행위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또한 할례는 장차오실 약속의 씨가 있음을 믿는 표시이기도 하다. 할례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형식적인 할례는 필요가 없어졌으며, 마음에 할례를 맞는다 라고 표현한다. 마음으로 약속인 언약을 믿는 자의 표상이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지키라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할례)는 것이다.

 

17:10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זֹ֣את בְּרִיתִ֞י אֲשֶׁ֣ר תִּשְׁמְר֗וּ בֵּינִי֙ וּבֵ֣ינֵיכֶ֔ם וּבֵ֥ין זַרְעֲךָ֖ אַחֲרֶ֑יךָ הִמֹּ֥ול לָכֶ֖ם כָּל־זָכָֽר

할례는 장차오실 약속의 씨가 있음을 믿는 표시이기도 하다. 할례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형식적인 할례는 필요가 없어졌으며, 마음에 할례를 맞는다 라고 표현한다. 마음으로 약속인 언약을 믿는 자의 표상이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지키라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할례)는 것이다.

마태복음 26 28절에서『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언약의 피가 바로 구약에서 할례였으며, 신약에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다. 죽음의 표현이 바로 세례다. 할례는 마음의 표시이다. 로마서 2 28-29절에서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17:11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וּבֶן־שְׁמֹנַ֣ת יָמִ֗ים יִמֹּ֥ול לָכֶ֛ם כָּל־זָכָ֖ר לְדֹרֹתֵיכֶ֑ם יְלִ֣יד בָּ֔יִת וּמִקְנַת־כֶּ֨סֶף֙ מִכֹּ֣ל בֶּן־נֵכָ֔ר אֲשֶׁ֛ר לֹ֥א מִֽזַּרְעֲךָ֖ הֽוּא׃

할례는 영원한 언약이다. 할례는 육을 베는 행위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시대의 세례의 모형이다. 골로새서 2 11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할례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였다.  창세기 17 13절에서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아야 할지니, 이에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말씀하셨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언약의 표시로 이스라엘 백성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었다. 할례는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예식이며 증거였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확실한 표시다. 할례는 외적인 표시도 있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할례를 말씀하시고 있다.  신명기 1016절에서 마음의 할례를 말했다. 마음의 할례는 육체의 죽음을 내포한다. 육적인 것이 죽을 때 약속한 씨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적으로 할례를 했다라도 마음의 할례가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례도 마찬가지다. 세례의식은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의식이다. 그러나 참된 거듭남이 없으면 성령세례도 없는 것이다. 형식의 세례의식을 했지만,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성령세례는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성령이신 것이다. 이것을 내적 구원의 성령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성령은 거듭난 자가 성령 충만을 위해 주시는 보혜사 성령이 있다. 이는 외적 돕는 성령이시다. 보혜사 성령의 시작은 예수님의 승천 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말씀을 전할 때 증거하시고 능력주시는 분이시다.

초대교회 이래 유대인의 할례를 기독교에서는 세례로 대신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한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형식적인 세례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삶을 사는 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거듭난 삶은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몸이 다시 태어나야 함을 말한다. 이전의 것이 죽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17:12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הִמֹּ֧ול׀ יִמֹּ֛ול יְלִ֥יד בֵּֽיתְךָ֖ וּמִקְנַ֣ת כַּסְפֶּ֑ךָ וְהָיְתָ֧ה בְרִיתִ֛י בִּבְשַׂרְכֶ֖ם לִבְרִ֥ית עֹולָֽם׃

아브람이 살고 있었던 고대 근동지역에서 할례가 있었다. 사춘기 또는 결혼 전에 행하는 풍속이었다. 그런데,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다. 신약시대는 할례를 이어받은 것이 세례이다. 중세시대는 세례를 유아세례때 부터 해야하는가 아니면, 성인이 되어서 세례의 의미를 깨닫고 다시 받아야 하는 재세례인가 라는 것이 분쟁의 한 요소가 되기도 했다. 신약에서도 마음의 할례를 말하고 있는데, 이런 분쟁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세례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세례나 할례의 의미는 죽음을 표시하는데, 그 의미를 모르는 자들은 외형적인 의식과 행위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팔일은 죽고 새창조를 나타낸다. 노아의 홍수 시대에 사람들은 물에 다 빠져 죽고 남은 자들(팔명)이 이 땅으로 내려와 새창조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이다. 팔은 너희들은 다 죽은 자들이며, 새롭게 시작된 자들이라는 것이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되는 자임을 나타낸다.

골로새서 211-12절에서『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7:13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הִמֹּ֧ול׀ יִמֹּ֛ול יְלִ֥יד בֵּֽיתְךָ֖ וּמִקְנַ֣ת כַּסְפֶּ֑ךָ וְהָיְתָ֧ה בְרִיתִ֛י בִּבְשַׂרְכֶ֖ם לִבְרִ֥ית עֹולָֽם׃

창세기 321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가죽옷은 레위기 16절에서『그는 또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것이요』 라고 되어있는데, 이와 연계되어 있다. 가죽옷을 히브리어로 가죽(오르)의 옷(코트노트)이다. 개역개정에서 가죽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영어성경의 skin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러나 skin은 살도 된다. 즉 가죽이라는 오르는 레위기 16절의 살 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옷은 번제물의 가죽에 해당된다.

가죽옷(살과 가죽)에서 가죽에 해당하는 오르는 벌거벗음을 면하다 라는 의미다. 벌거벗은 살은 육체이며, 영이 갇힌 곳이기도 하다. 영이 갇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의 영이 옥에 갇힌 것이다. 베드로후서 2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세상에 던져진 자들은 다 벌거벗은 자들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인간들은 다 이와 같은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벌거벗었음을 면하기 위해 옷을 입히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받은 살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여인의 후손)에 대한 흔적이 들어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지금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육체)은 종교심(헬라어 사륵스)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부분 인간들은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을 찾고 있다. 자연숭배, 정령숭배, 우상숭배들이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으로 온갖 더렵혀진 종교심, 즉 가죽을 벗겨버리고 살을 각을 내어 태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참 신이신 하나님을 찾는 살로 옷을 다시 입히시는 것이다. 이전의 것(옛사람)은 불로 태우고 새로운 옷으로 입는다. 이게 구원받은 자의 가죽옷이다. 가죽옷은 그리스도 안을 상징하며, 노아시대 방주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17:14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베리트)을 배반하였음이니라

וְעָרֵ֣ל׀ זָכָ֗ר אֲשֶׁ֤ר לֹֽא־יִמֹּול֙ אֶת־בְּשַׂ֣ר עָרְלָתֹ֔ו וְנִכְרְתָ֛ה הַנֶּ֥פֶשׁ הַהִ֖וא מֵעַמֶּ֑יהָ אֶת־בְּרִיתִ֖י הֵפַֽר׃ ס

베리트는 자르다 라는 의미다. 횃불언약에서 나온다. 언약을 어기면 쪼개진 동물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오트(표징)에 대해서, 창세기 415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을 죽이는 자는 가인의 방법으로 살인하는 자라는 의미다. 일곱은 언약 맹세라는 의미다. 일곱배 벌을 받는다 라는 말은 언약을 통해서 받는 저주(보복)를 담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진노의 포도주라고 했는데, 진노는 하나님의 일하심(보복)이다. 가인을 통해서 가인과 같은 나를 발견하고 자아를 죽이면 생명의 양식이 된다. 그러나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된다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살인자 가인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주어지는 것이다.

가인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부인하는 것이 곧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이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자를 말한다. 육체가 살아있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는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는 자는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이 세상에 있는 인간은 육체의 죽음외에 심판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자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심판을 받은 것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백보좌 심판때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가인이 표(언약)을 가지고 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살인자였지만, 돌이켜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구원의 표(그리스도)를 주시고, 그 표를 가지고 있는 가인(회개하여 돌이킨)을 만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언약의 실체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창세기 912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914-15절에서『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오트는 증거 또는 언약의 표시를 의미한다. 출애굽기 312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요한복음 62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헬라어:세메이온)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세메이온이 히브리어로 오트이다. 요한복음 632-33절에서는『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오트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의 약속인 것이다.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부르짖는 가인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주시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부르짖지 않는 자에게는 오트는 심판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의 의를 추구하는 자는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지 못하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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