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장 26절영혼(프뉴마토스)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프뉴마토스(πνεύματος)는 영(성령)을 의미한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아 영이 죽어있는 몸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한다. 야고보서 1장 22절에서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고, 죽은 자라는 말씀이다. 행함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야고보서 1장 23-25절에서『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거울에 드러난 자기의 얼굴은 참 얼굴이 아니라, 그림자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율법이요, 참 형상은 그리스도이시다. 골로새서 2장 16-17절에서『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초대교회 당시에 율법과 복음에 대한 논쟁이 많았음을 알게한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그림자이나, 복음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셨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음은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사전에 모델하우스에 가서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계약하고 입주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파트가 완성되어 집주인이 계약한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전에 갔던 모델 하우스에 가서 이곳에서 지내겠다는 모양이다. 모델하우스는 그림자요, 진째는 입주할 아파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받아드리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으면, 율법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계속 율법에 머물고 있으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도행전 15장 12-41절에서, 당시에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할례로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안디옥 교회는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친 사람들이 등장함으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게 되었다. 구원 교리에 관한 신학적인 논쟁을 안디옥 교회는 자체적으로 결정지을 수 없었기에 바울과 바나바와 대표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로 파송했다. 안디옥 교회에서 발생한 구원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불붙게 되었다.

 

베드로가 할례와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방인들로 구성된 백부장 고넬료 집안사람들과 유대인들로 구성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구원받은 것이었다(7-9). 둘째는 과거 유대인 조상들과 현재 예루살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방식으로 구원받은 것이었다(10-11).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원하는 방식이 시대에 상관없이 동일함을 강조했다.

 

야고보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은(14) 단순히 베드로의 경험이 아니라 성경 말씀(아모스 9장 11-12절)을 성취한 것으로 보았다. 베드로의 사역은 선지자들의 말씀과 일치하는 사역이었다. 야고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구원은 할례나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아모스서를 근거로 주장한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와 베드로와 야고보의 주장은 같았다.

 

베드로와 바울과 야고보의 최종 증언을 들은 후 예루살렘 교회는 최종 결정을 내렸고, 결정된 내용을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알리기로 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친 사람은 예루살렘 교회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예루살렘 교회는 공식 입장을 안디옥 교회에 알리기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였던 유다와 실라를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냈다(22,27).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서 불거진 구원에 대한 진리 외에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내용을 덧붙였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대다수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과거 우상을 섬길 때의 삶의 방식이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고보는 모세의 율법에 근거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우상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 완전히 끊어 버리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바랬던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과 안디옥 교회의 사도들과 대표들이 모여서 구원의 문제를 논의한 최초의 회의였고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로 보낸 편지는 교회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공식문서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회의와 공식문서를 통해서 할례와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친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한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은 율법을 떠나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는 신자들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행함이란 율법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오늘날도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인 것이다.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것같이 예수의 피로 죄 용서를 받아야만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 안식일(주일 성수), 안식년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거나, 절기를 지키는 행위, 십일조를 철저히 행해야 한다는 것이라든가,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해서 거룩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들, 사역자를 제사장 그룹으로 생각하는 자들, 계명을 문자 그대로 철저히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율법 속에 갇혀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없는 것이다. 즉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은 사람들이다. 율법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결국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할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죄인은 희생제물을 가지고 성소마당으로 들어오면, 제물을 죽여서 죄를 전가하고,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죄사함을 받았다. 이 때 희생양만 죽은 것이 아니라, 죄인도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그런데, 죄인은 희생양이 죽었으므로,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사람들을 대속하여 죽었으므로 그것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원리에서, 마찬가지로 그 믿는 사람도 예수와 함께 죽었음을 믿어야 한다. 로마서 6장 3-5절『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따라서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율법에서 벗어나는 행함이요, 예수와 함께 죽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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