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4의 게시물 표시

므나의 비유

  므나의 비유   누가복음  19 장  11-27 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이 비유는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와 흡사하다 .  그...

마르다와 마리아

누가복음 10장 38-42절『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전에 죽었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리신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보면, 『베다니』라는 가난한 동네에서『나사로』라는 사람이 죽었다. 그때 나사로의 누이였던 마르다가 예수님께 나온 것이다. 예수님이 다른 일로 지체를 해서 베마르다의 집에 늦게 도착했다. 마르다에게,『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했는데,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했다. 이미 나사로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너의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와『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의 차이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내가 바로 부활이고 생명인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 말을『죽은 후에 언젠가 다시 살아나겠지』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음은 나를 믿는 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였었지만, 이제 살겠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전에는 영적으로 죽었지만 살아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이것을 믿느냐』라고 하셨다. 그런데 마르다가 답하였다.『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이 고백은 성경 지식으로 아는 말이다. 이 고백은 예수님과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고백이다. 자기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가복음 6장 41-44절『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며,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고, 열두해 혈루병으로 고통을 받던 여인이 병에서 벗어나며, 바람을 잔잔하게 하시고, 손마른 자, 중풍병자, 나병환자를 고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식사할 겨를도 없이 가르치다가 저녁이 된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날이 저무는데, 저들에게 뭣이라도 먹게 해야되지 않느냐면서 여쭐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제자 중 하나(빌립)가『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반응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6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신 분이었는데, 빌립은 인간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백 데나리온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느냐 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만, 그 믿음이 자신과 하나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곳에 왔던 사람들에게 인...

등경 위의 등불

마가복음 4장 21-23절『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먼저 한글 개역개정의 번역이 헬라어 성경과 비교해 볼 때, 잘못되었다. 다시 수정을 해보면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상자 밑에나 침상 밑에 두려고 등잔불을 가져오느냐 등잔대 위에 두려고 가져오지 아니하느냐 감추어 둔 것 중에서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은밀히 간직한 것 중에서 널리 퍼지지 아니할 것이 없느니라.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헬라어 번역성경) 창세기 1장의 첫째날에서 일곱째 날까지 표현을 하면, 빛, 궁창, 뭍(씨), 마오르, 새(바다), 짐승(사람), 안식으로 나누어진다. 이를 성소의 용어와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의 내용과 연결하여 적용할 수 있다.  넷째 날, 마오르는 등잔대와 같다. 요한계시록은 일곱별(일곱교회의 사자)을 의미한다. 일곱별은 복음을 전하는 자(성도)를 의미한다. 성도는 현재적 부활을 믿는 별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이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8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9장은 맹인을 고쳐주신다. 절기로는 오순절과 관계된다. 요한계시록은 6-7장의 내용과 관련된다. 일곱 봉인과 인을 치는 내용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므로, 성도는 성령세례를 받고, 세상으로 나가 천국 복음을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임마누엘이다.  교회의 성도가 임마누엘이 되면 교회 안에 빛이 되는 것이다. 임마누엘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것이다. 즉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가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이 등잔불이 된다.  빛이 그 안에서 발산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 빛이 되는...

달런트 비유

마태복음25장14-30절『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성경은 비유로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비유가 아니면 ...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마태복음 15장 32절『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불쌍히 여기노라”(σπλαγχνίζομαι 스플랑크니조마이)에서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열망하다, 열정을 가지다(I have compassion on the multitude”kjv) 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무리를 통해서 무엇에 대한 열정을 가지는가? Passion of Christ는 “영적으로 세상에 버려진 자를 구원하려는” 열정이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연결된다. 예수님이 엄청난 고통의 십자가에서도 죄인들을 살리기 위한 피흘리심을 볼 수 있다. 그분은 마지막 죽어가면서, 하나님께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들이었던 범죄한 천사의 영을 흙에 가두었으며, 사람이 되게 했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6장 5-6절에서『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범죄한 천사의 영이 흙과 결합된 사람의 상태는 탐욕이라는 죄로 물든 상태였으며, 하나님이 그의 아들들을 흙에 가두어 보니 참으로 마음에 근심이 드시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자식이 죄를 지어서, 아버지가 감옥에 가도록 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가두었지만,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그들을 구원하도록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계획하신 것이다. 이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한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단순히 죄인을 구하는 그런 대속의 죽음 이전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들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된 죄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옛사람은 하나님처럼 되고 ...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 장 15 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아가파스 )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 필로 )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필로 ( 필레오 ) 는 친구간의 사랑이다 . 예수님은 아가페 ( 가치에 대한 사랑 ) 로 물었는데 , 베드로는 필레오로 대답했다 . 서로 촛점이 맞지 않는 것이다 .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양을 먹이라고 한다 . 주님의 어린양은 주님이 데려가야 할 양을 의미한다 . 예수님이 보시기에 베드로는 여전히 아가페의 사랑이 안된 상태로 보인 것이다 . 그래서 다시 말씀하신다 . 21 장 16 절에서 『다시 두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 필로 ) 줄 당신께서 아시나이다 ,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 내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여기서도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다 . 두번째 말씀에도 예수님이 보시기에 베드로는 여전히 아가페의 사랑이 안된 것이다 . 그래서 다시 말씀하신다 . 21 장 17 절에서『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필레이스 )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필레오 )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 엘뤼페데 )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 필로 )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 기노스케이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이번에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필레오로 질문했다 .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사랑하느냐 라고 물은 것이다 . 기노스케이스 ( γιν ώ σκει ς 기노스코 ) 는 관계를 통하여 아는 것이다 . 아가페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의 그 가치 (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 를 의미한다 . 그 가치를 깨...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마가복음 1장 23-27절『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마가복음 1장 21-22절『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공적으로 모여서 종교적 의례를 행하지는 않았다. 이날은 말 그대로 안식하는 날이었지 어떤 종교적 의무를 행하는 날은 아니었다. 물론 가정에서 사적으로 지키는 의례는 있었지만, 공적으로 모여서 드리는 예식은 따로 없었다. 유대인들은 일 년에 세번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갔다. 유대인들의 명절인 초막절, 칠칠절, 유월절에는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성전으로 와야 했다. 그러나 성전 중심의 종교는 유다의 멸망으로 끝을 맺는다. 주전 587년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는 점령당하고, 예루살렘은 파괴된다. 성전은 무너졌고, 성전 기물들은 바벨론으로 옮겨졌다. 그동안 성전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었고, 이스라엘의 상징이며 구심점이었다. 그런데 그런 종교적 상징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그들이 찾은 것이 말씀이었다. 포로기에 그들은 오히려 말씀에 집착했다. 거룩한 문서들을 정리했고 책으로 엮었다. 제사가 중심이던 성전 전통에서는 소홀했던 일이다. 그리고 성전 대신 그들은 회당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유대인 남성 10명 이상이 모이면 회당을 세우도록 했다. 중요한 것은, 회당은...

금식논쟁

  금식 논쟁   마가복음 18 장 22 절『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적인 경건 중의 하나가 금식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대속죄일에 온 백성으로 금식하도록 명하셨다 . 그 날에는 제사장도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으며 , 향을 피우고 피를 뿌리며 하나님께 나아갔다 . 더불어 온 백성도 먹기를 그치고 함께 나아가야 했다 . 또 어떤 일로 하나님의 진노가 느껴질 때면 그들은 온 종일 금식하며 울어야 했다 . 자기 옷을 찢고 재를 뿌리며 먹기를 그치고 울어야 했다 . 이것이 구약시대의 금식의 모습이다 . 구약의 질서에 따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것은 그들의 경건모습이었다 .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라고 묻고 있다 . 주님은 자신을 혼인집의 신랑으로 , 제자들을 혼인집의 손님으로 말하고 있다 . 그리고 신랑이신 예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기쁨의 혼인잔치가 시작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시므로 금식의 문제에 대해 답하고 계시다 . 지금도 구약적인 의미로 금식을 가르치고 , 마치 그것이 의의 한 기준이나 되는 것처럼 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으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맞지도 않다는 것이다 . 기독교는 새로운 천을 잘라서 낡은 구멍난 옷에 붙여 짜집기 한 것과 같은 부조화스러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 요한의 제자들의 틀에 매인 금식요구에 대하여 주님은 『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마가복음  1 장  1-8 절『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사야의 글에 나타난다 .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내 사자는 세례요한을 의미한다 .  이 세례요한은 말라기 (4 장  5 절 ) 에서 보듯이 엘리야이다 .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요엘  2 장  31-32 절에서 더 상세하게 언급된다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선지...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마가복음 12장 35-37절『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성경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과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분과 부활 승천하시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The LORD)이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의 영으로 인해, 그리스도(The Lord)를 예정하셔서 스스로 흙속에 들어가서 첫사람이 되었고, 다시 그를 잠들게하여(죽음:십자가의 예표) 남자와 여자로 분리하여, 모든 인간들에게 육의 몸을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그 범죄한 천사의 영을 태어나는 인간들의 몸에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정하신 대로, 스스로 마지막 사람 아담(부활의 예표)으로 태어나, 회개하는 자들에게 영의 몸(부활:그리스도의 옷)을 주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The Lord)는 여러가지 모양으로 오셨다. 셀렘왕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는 자의 모습으로, 상수리 나무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시는 자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요한복음 8장 55-59절에서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 누가복음 18장 1-8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성경에서”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잠깐 자는 것과 같다”라고 했으며,”우리 인생이 칠십이요 팔십이라도 일식간에 날라간”라고도 했다. 그런데 인간들은 마음 속으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심판을 대비하라”는 말인데, 전혀 그런 마음이 없는듯하다.『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불의한 재판관 앞에 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니, 이 말씀을『하나님께 매달리며 간구하는 기도로』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은『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서 말하고 있다.『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

고향에서 배척당하시는 예수님

  고향에서 배척당하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6 장  3-6 절 『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 에스칸달리존토   엔   아우토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육의   눈으로   바라보면   배척하는   일이   일어난다 .   그러나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나님 아들을 영접하게 된다 .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신 자 ( 그리스도 ) 를 믿는 것이다 .   베드로는 예수님께『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갑자기 반기를 든 것이다 .   즉 죽으시면 안된다는 말이다 .   마태복음   16 장   21-23 절에서『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