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마태복음 15장 32절『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불쌍히 여기노라”(σπλαγχνίζομαι 스플랑크니조마이)에서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열망하다, 열정을 가지다(I have compassion on the multitude”kjv) 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무리를 통해서 무엇에 대한 열정을 가지는가? Passion of Christ는 “영적으로 세상에 버려진 자를 구원하려는” 열정이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연결된다. 예수님이 엄청난 고통의 십자가에서도 죄인들을 살리기 위한 피흘리심을 볼 수 있다. 그분은 마지막 죽어가면서, 하나님께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들이었던 범죄한 천사의 영을 흙에 가두었으며, 사람이 되게 했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6장 5-6절에서『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범죄한 천사의 영이 흙과 결합된 사람의 상태는 탐욕이라는 죄로 물든 상태였으며, 하나님이 그의 아들들을 흙에 가두어 보니 참으로 마음에 근심이 드시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자식이 죄를 지어서, 아버지가 감옥에 가도록 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가두었지만,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그들을 구원하도록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계획하신 것이다. 이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한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단순히 죄인을 구하는 그런 대속의 죽음 이전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들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된 죄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옛사람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그 탐욕의 마음을 가진 자였다. 그래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옛사람의 옷을 벗고 새사람이 된 자다. 회개하지 않으면 새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회개를 하지만 어떻게 100% 완벽하게 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옛사람을 개선하려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은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죽음의 대상이다. 제거해야만 되는 것이다. 이게 100%의 회개라는 것이다.
『어떻게 옛사람이 죽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로마서 6장에서 처럼 세례를 통해서 그런 자가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성도는 이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신다.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자기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자기라는 존재는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탐욕의 원흉이기 때문이다.
율법 아래에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만,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는 자는 그리스도의 열정(십자가의 죽음)에 의해 구원(부활)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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