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린 아이를 치료못하는 제자들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못하는 제자들
마가복음 9장 17-20절『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마가복음에는 귀신들린 아이라는 표현이지만, 마태복음은 17장 15-16절에서 간질로 고생하는 아이라고 표현되었다.『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물에 넘어지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할 자를 의미하며, 불에 넘어지는 자는 옛사람(혼)에 대해서 불에 타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마가복음의 예로 귀신들린 자는 죄인으로서 흙에 갇혀 귀신의 지배 아래 있는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간질로 고생하는 자를 어떤 사람이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이 고쳐주었다. 제자들이『우리는 왜 고치지 못합니까』라고 물렀더니『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시면서, 20절에서『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간질병을 고치지 못한 이유는 제자들이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믿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연결된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성도의 믿음이다. 현실적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것을 믿는 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현재적으로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는 극히 소수일 것이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을 믿는 믿음이다. 성도가 현재적으로 부활한 것을 믿으면, 성도의 심령 속에 옛성전(이 산)을 저리로 옮겨버린다. 그래서 저 산(새성전)을 저기서 여기로 옮겨버리라고 하면 옮겨지는 것이다. 이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심령 속에 새성전이 들어서고 그리스도가 심령 속으로 재림해 들어오므로, 성도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권능은 병을 치료하고 죄를 사해주고 귀신으로부터 자유를 주는 권능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귀신들리고 간질병 들린 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활의 능력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적 부활생명의 능력이 없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죄인으로 머물러 있게 된다. 그래서 패역한 세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세 차례나 제자들에게 말을 했지만, 귀담아 듣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패역한 세다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인데, 어떻게 부활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 궁금하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분이기 때문에, 살아계신 동안에는 제자들이 직접 권능을 부여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생명에 대한 기대는 조금도 없었으므로 그들에게 능력이 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