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6장 4절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요나는 여로보암 2세 때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갑자기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고 배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사경을 헤매면서 뱃사람들은 하나의 지혜를 짜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찾자는 것이다.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걸렸다. 그때에서야 요나는 자신의 죄를 고백했지만, 그는 바다에 빠뜨려졌다. 그래서 거치른 풍랑은 즉시로 멈췄다. 깊은 물에 빠진 요나,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다. 그리고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 요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밤낮 사흘을 지냈다. 그 뱃속에서 요나는 크게 회개했다. 그래서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냈으며,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고하며 회개를 외쳤다. 그런데, 요나의 말을 들은 니느웨사람들은 크게 회개했다.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야말로 대각성의 회개가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장차 무덤에서 일어나실 주님의 부활처럼, 부활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당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깨닫지 못했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회개는 커녕,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교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회개하라』는 말을『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라는 말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일을 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좋지않은 일을 했을 때,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들이 보기에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을 하게되면 교회에 와서 그 행위에 대해서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회개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회개하라』의 의미를『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뉘우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라는 말로 이해를 한다면 성경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예수님께서『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누구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왜 우리가 자유케 된다고 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예수님이『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율법을 가지고 잘 지켰으므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다 죄인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율법에 따라서 제사를 드리면『죄가 다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회개할 것이 없는데, 예수님은『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교회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죄를 회개한다』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곧 세상 사람들의 죄요,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죄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말이다. 창세기에서 죄는 하나님이『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인간이 먹은 것이 죄다. 즉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가진 것이 죄라는 말이다.


율법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에게 열심히 행해서 의를 이루어 보라고 주신 법이다.『의를 이루어 보라는 것』은 스스로 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 속에서『하나님의 구원의 생명을 발견하라』는 말씀이다. 그 생명을 발견하는 것은 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완벽히 지키는 것이 의롭게 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그것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없이 스스로 율법을 지키거나 그 열매를 먹은 결과로서, 하나님없이 선악을 판단하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모든 것은『스스로 선악을 판단한다고 말해도 악한 것이라』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하나님 안에서 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율법에 비추어서 선을 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따라서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율법의 기준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지켜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것이다. 기준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지만 그것을 판단하고 행하는 것은『인간이 스스로 한다』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결국『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회개하라』라고 외친다면 무엇을『회개하라』는 것인가? 스스로『선악을 판단해 보겠다』라고 과실을 먹고, 하나님을 떠났는데,『회개하라』는 말은 하나님께로『돌아오라』는 의미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상태에서『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으면 모두 악한 존재가 된다』라는 것이다. 즉 율법을『스스로 지켜서 의로운 자가 되어보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자는『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데, 스스로 율법을 지켰으니 의로운 자가 된다』라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스스로 의인될 수 있다』고 계속 우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회개하라』고 외친 것이다. 율법으로는 의인이 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말씀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하나님 없이도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율법을 지켜서『스스로 의인이 되어보겠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담과 하와에게 『회개하라』는 말을 적용한다면 그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이며, 회개의 뜻이다.『스스로 할 수 있다』라는 것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떠나『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나, 하나님없이 율법의 기준으로『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죄인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으므로, 스스로 하지 말고『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이 바로『회개하라』는 말이다. 오늘날에도 율법에 비추어서『스스로 죄를 짓는지 판단하는 자들』이 여전히 많다. 죄를 속죄받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문제는 해결된다.『회개한다』라는 말은『다시 한번 재고하다, 뉘우치다, 가던 길을 방향을 바꾸어서 돌아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회개하라』라고 하신 것은『율법을 가지고 스스로 열심히 지켜서 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만나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이다.『스스로』를 포기하고 하나님 속으로 돌아오라는 말이다. 그래서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신다. 결론적으로 요나의 표적은 회개하는 자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적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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