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구약성경 인용)
누가복음 2장 21-24절『할례 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의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을 했는데, 누가복음 1장 31절에서『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고 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할례할 팔일에 이름을 예수라 했다.
할례의 의식은 할례의 의식은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육체의 죽음을 나타낸다.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라는 것이다.(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상징) 둘째는 씨의 약속이 벤 흔적 속에 있다는 것이다. 즉 새창조를 약속한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에 함으로서 씨의 약속을 나타낸다. 씨의 약속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할례를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할례는 형식적인 할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마음의 할례를 강조했다. 로마서 2장 29절에서『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할례는 죽는 의식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마음의 할례가 바로 오늘날 세례(침례)의식이다.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고(물세례),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부활(성령세례)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4-5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옛사람(육의 몸)이 죽고 새사람(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마음의 할례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는『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그리스도의 할례가 바로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요,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장남은 희생제물을 바쳐야 했다. 출애굽기 13장 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것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따라서 가난한 자들은 비둘기 한쌍으로 제물을 드릴 수 있었다. 메시야의 비천한 형편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메시야의 사역이 세상의 좋은 조건들에 의존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탄생 목적이 사람들을 섬기는데 있다는 것을 예시하고 있다. 마태복음 20장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예수님은 비둘기에 대해서,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순결하다 라는 헬라어는 아케라이오이(ἀκέραιοι)이다. 아(ἀ)는 부정을 의미한다. 케라이오이(기본형은 케라이오스인데, 케란누미에서 유래)는 순진한, 단순한 이라는 의미다. 케란누미는 섞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ἀ)가 있으므로 섞이지 않다 라는 말이다.
히브리어 요나(비둘기)와 같은 의미다. 섞이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둘기를 의미하는 요나는 섞이지 않은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받는 장면에서 비둘기가 등장한다. 요한복음 1장 32절에서『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노아의 홍수는 세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라고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 말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린 것은 방주에서 비둘기가 나가는 것과 같은 장면인 것이다. 세례는 이전의 것은 죽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이전의 것과 섞이지 않는 것이, 세례이고, 할례인 것이다.
레위기 12장 6-8절에서도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낳은 여인이 산혈이 깨끗게 되는 기간이 되면 번제와 속죄제를 드릴 것을 명하셨다. 여기서 번제는 출산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드린 제사로 산모의 가정 형편이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어린 양이나 비둘기 중 하나를 택하여 여호와께 바쳐야 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치는 제물의 값어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이었다. 구약 시대에는 일반인이 성소에 들어가거나 직접 제물을 바칠 수가 없었기에,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성도들이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태어남에 왜 부정함을 연결시켜 두셨는가? 사람은 태어나자 말자 죄인이 된다.『부정함』이란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이 복은 하늘의 복을 나타낸다. 비록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이 세상에 갇혀 있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하여 이 세상을 다스려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물질적 축복을 받고 잘 살아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지만,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는 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모든 만물 위에 있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와 연합될 때, 모든 만물 위에 충만해지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6절에서『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이는 상징적인 표현을 나타낸다. 남편은 그리스도이시다. 아내는 하나님 나라의 처소를 떠난 영들이다. 임신은 하나님 나라의 처소를 떠난 영들을 이 세상에 가두는 것을 상징한다. 임신하는 고통은 하나님 나라를 떠나는 고통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떨어져나간 영들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다. 그래서 영이 육체 속에 갇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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