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구약성경 인용)


마태복음 18장 19-20절『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말의 시작은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한 권고로부터 시작한다. 단둘이 있는 데서 권고를 하는데도 듣지 않으면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라는 것이다.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는데, 출애굽기 20장 14절은 마음에 품은 음욕(탐심)에 대한 말씀이고, 신명기 5장 18절의 말씀은 우상숭배를 할 때 남녀가 음란한 짓을 하는 간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 갔을 때, 사십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하며, 뛰놀았다고 표현한다. 이는 음란한 행위로서 하나님께 대한 영적 간음을 의미한다.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셨는데, 율법에서 벗어나서 복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면 부활생명을 얻게되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어떤 형제(영적 형제)가 예수를 믿지만, 율법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께 대하여는 죄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바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간음하는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 신명기 17장 6-7절에서『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돌로 치기 전에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뭇 백성이 손을 댄다. 죄임을 분명히 하게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 16절에서도 이와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18장 17-18절에서는『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여기에서 교회는 교회 공동체를 의미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것이다. 복음과 율법을 섞는 자는 이와 같은 자들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마태복음 7장 6절에서『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교회 공동체가 죄를 범한 자를 땅에서 죄의 그물로 다시 묶었으므로, 하늘에서도 묶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 대부분이 이런 영적 간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땅에서 죄의 그물에 묶여 있으므로, 하늘에서도 묶이는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예수믿는다고 하는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 예수님이 그들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을 온전히 믿는 자들이 모이는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복음과 율법을 혼합하여 믿는 곳은 예수님이 있지 않은 것이다. 복음은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신도들이 예수의 피로 죄 사하였음을 믿을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해서도 예수와 함께 죽는 자가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이다. 부활은 현재적 부활로서 영적으로 부활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그런 개념이 아닌 것이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의 몸을 입고 하늘에 앉히신바 되는 것이다. 성령 세례로 부활생명을 받으면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님이 그 성전으로 재림하여 들어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성도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성도의 심령 속에 임하는 것을 성경은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라고 표현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두 세사람은 증인의 역할을 한다. 구약시대에는 간음한 자를 돌로 치기 전에 증인으로 두 세사람이고, 신약에서는 죄를 범하는 형제에게 권고하기 위해 두 세사람의 증인이 필요했다. 어느 교회 공동체나 이렇게 복음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영적 간음에 대해서 권고할 수 있는 자가 두 세사람 정도는 있어야 교회 공동체가 된다. 그래야 잘못된 신앙관에 대해서 권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자가 하나도 없다면 교회 공동체라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이름은 예수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분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현재적으로 부활함을 믿는 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다. 현재적으로 부활함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신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다고 말을 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은 교회 공동체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다. 돌 성전은 무너져야만 하는 것이다. 성전은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라고 말하는 성도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초대 교회 당시는 가정 교회라고 해서, 가정마다 돌아가면서 모임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게 교회 공동체라는 말이다. 오늘날은 구역모임이 이와 유사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도들의 생각에는 교회 공동체를 멋진 건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매 일요일 마다 나가는 그 건물이 교회 공동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그 건물을 성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신도들이 많이 있다.


그 분의 이름(예수 그리스도)으로 두 세사람의 성도가 모인 곳에 예수님이 함께 임하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도 부부와 자녀가 참 복음, 십자가의 죽음과 현재적 부활에 연합되는 것을 믿는다면, 그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다.


두 세사람에서 둘은 최소한 부부 공동체를 염두에 두시고, 세사람은 자녀가 있을 경우 가정 교회 공동체가 됨을 말해준다. 나아가 가정과 가정이 만나면 획대된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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