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구약성경 인용)
마태복음 1장 21-23절『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아하스 왕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께 정직하지 못했다고 한다. 역대하28장 1 절『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그의 조상 다윗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그는 우상숭배와 몰렉 등 가증한 제사를 행했다. 역대하28장2-4절『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하나님은 분노하시어 이방 나라를 동원하여 유다를 치게 하셨다. (열왕기하15장 37절)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유다를 쳐서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여 돌이키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러나 유다의 아하스 왕은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북 이스라엘과 알람의 공격을 허용하신 것이다. 백성들은 이들의 공격에 심히 떨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유다를 지켜주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면서 징조(표적)를 구하라고 했다.
이사야 7장 14절『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는 이 말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유다는 여자를 상징한다. 유다는 온갖 우상숭배에 찌든 나라였기에 하나님이 새롭게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래서 처녀는 새로 시작하는 유다를 의미한다. 그동안 우상숭배로 오염되어 있는 나라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아하스는 다윗의 후손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마음에 맞는 자라고 인정하셨다. 하나님은 아하스가 다윗과 같은 그런 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들로 하시겠다는 것이다. 아들은 바로 새로 태어나는 나라의 왕 아하스가 될 것이다. 이는 엄청난 징조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아하스가 비록 죄가운데 있었지만, 우상숭배를 회개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리기를 바라신 것이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아하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이 앞에서 싸우시므로,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물리쳐 줄 것이라고 이사야가 전하는 말씀이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찾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전한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하나님께서 징조를 구하라고 했는데 아하스 왕은 징조를 구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포장은 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이유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었다. 하나님이 내 생존의 문제를,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아하스 왕이 생각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앗수르의 힘을 빌어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무찌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계획이 있으니 하나님은 가만히 좀 있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하스가 이렇게 말을 할 것에 대비하여 이사야에게 아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그것은 이사야의 아들이 가진 이름 때문에 그렇다. 이사야의 아들의 이름은 스알야숩인데,『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남은 자에 대해서 이사야 6장 13절에서 말한다.『그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 내용은 이사야의 소명 가운데 나오는 내용이다. 이사야가 하나님께『하나님 제가 누구에게 가서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라고 여쭈어본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너는 가서 내가 이 백성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심판할 것임을 알려라. 그러나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가 남지 않느냐 그와 같이 내 심판을 이겨낸 거룩한 씨로 말미암아 이 땅에 새로운 나의 백성들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심판을 이겨낸 거룩한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데, 이사야의 아들을 통해서, 당시 아하스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드린 자는 그루터기가 되었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받았다는 것이다.
마치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여 여리고 성을 쉽게 무너뜨렸지만, 인간적 생각이 개입된 아이성의 전투에서는 많은 피해를 입게 된 것과 비교되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의 내면에 옛사람의 성전과 새사람의 성전에서의 싸움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새성전(처녀)으로부터 나온 새사람은 마지막 아담인 아들인 것이다. 그러면 심령 속의 옛성전(여자)으로부터 나온 옛사람은 죄의 몸을 주는 첫사람 아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사야와 그 아들을 통해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셨다. 하나님께서는 부인하지 못할 명확한 징조 즉, 임마누엘을 보이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처녀가 낳은 아들이라는 영적인 언약이 있는 임마누엘, 임마누엘은 이사야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그 심판을 벗어난 구원이라는 맥락 가운데 이루어진다. 즉 하나님은 스알야숩이라는 이사야의 아들을 통해서 심판과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보이셨고, 그 메시지는 처녀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된 실체로 나타났다.
처녀는 절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즉, 이것은 사람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처녀의 아들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을 마태는 마태복음 1장21절에서 그대로 인용한다.『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그리고 그 이름을 예수라고 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거듭난 영적 이스라엘이 잉태하여 하나님 아들이라 칭함을 받았으니 그 이름이 예수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성도가 영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으니 그 이름이 예수라,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들어서면 그 성전에는 예수라는 이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고,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 안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들어가 임재하실 때, 그 성도 역시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신도가 예수믿는다고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임마누엘이 된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적으로 부활함을 믿는 자이며, 육체가 죽어서 부활한다고 믿는 자는 임마누엘과 상관없는 자가 된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말을 하는 성도에게 핍박을 하게 되며, 극히 적은 수가 영적 부활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사야가 말하는 남은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참으로 징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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