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구약성경 인용)
마태복음 26장 39-40절『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포테리온)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포테리온은 마시다 라는 피노에서 유래되었으며, 마시는 그릇, 잔, 상징적으로 죽음, 숙명 등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잔이 지나간다는 것은 죽음이 지나간다는 것으로서, 십자가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육으로는 마리아로부터 온 죄의 몸을 가지고,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육적 자아와 하나님 아들이라는 영적 자아가 부딪힌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럼에도 육적 자아 예수는 영적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탄식하며 불만을 드러낸다. 그냥 쓴물이 단물이 되게 할 수 없는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5장 22-25절에서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하는 목소리인 것이다.『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여기에서 한 나무가 등장한다. 쓴물은 죄인을 상징하며, 죄인을 대속해야 하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쓴물에 나무를 던지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을 할 때, 하나님이 한 나무를 던지게하여 단물을 내게 했으므로, 이와 같이 육의 몸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어서 영의 몸인 부활의 단물을 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예수는 이 사실을 직면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시험은 순종에 대한 시험이다. 예수님은 두가지의 시험을 받으셨다. 첫번째는 사탄의 시험이다. 사탄은 마리아로부터 받은 육체, 즉 육적 자아를 가진 예수(떡)가 하나님의 아들(말씀)로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분명히 말했다. 그는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육의 몸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죽고, 하늘로 오는 양식인 부활생명을 가져야 함을 말해준다.
그 다음에 사탄은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을 것이라고 했다.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해보려는 의도이다. 사람의 육적 자아는 하나님을 시험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심판받았다. 예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자신은 육적 자아를 가진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사탄은 자신에게 경배하라고 했다. 원래 자신에게 준 세상이므로 경배하면 다시 돌려주겠다고 한다. 육적 자아를 가진 예수를 하나님 자리에 앉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 만을 경배하라고 하며,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두번째의 시험은 아브라함의 시험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야 산으로 데려가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가서 그의 아들을 죽이려는 순간 천사가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칭찬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순종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죄인을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지만, 예수님은 이 장엄한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육적 자아(혼)의 예수는 쓴 잔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예수의 혼은 죽음을 피하고 싶으나, 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순종하면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내리지 않게 하겠다면서, 여호와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곧바로 육적 자아인 예수에게 이 말을 전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역에 순종하면, 죽음에서 치료하여, 하나님이 부활생명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신도는 육적 자아의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간의 숨막히는 논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 26장 39절에서는 간단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οὕτως οὐκ ἰσχύσατε μίαν ὥραν γρηγορῆσαι μετ’ ἐμοῦ』헬라어 성경은 다시 번역하면,『너희들은 나와 함께 언제라도 깨어있을 수 없느냐』라는 것이다. 한 시간이라는 말에서, 미안(μίαν)은 한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때 라는 말로서 특정한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서『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미안 μίαν)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한 말씀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말한 그 시점에 라는 의미다.
그 말씀이 신도에게 적용되어 깨달아지면, 하나님이 그 신도에게 그 때 하신 말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영적으로 어둠에 싸여있는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말한다. 육적 자아가 십자가를 거부하듯이 영적 어둠에 있으면,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십자가의 죽음이지만, 결국 부활생명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함인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잠을 자는 것을 보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잠을 잔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둠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시면, 제자들의 몸을 통해서, 나아가 성도의 몸을 통해서 사역을 계속 이루어가시는 것이다.
제자들도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생명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또한 영적으로 낳고 낳는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깨어있지 못하면, 결국 영적 어둠에 싸이게 되고, 육적 자아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항하는 것이다. 신도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일도 없게 된다. 성도의 영적 전쟁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육적 자아인 것이다.
성도 역시 예수님이 하신대로 말씀에 순종해야만 한다.『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가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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