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5의 게시물 표시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구약성경 인용) 요한복음 15장 21-27절『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을 핍박하는데, 율법에서는 법을 어기는 것이 죄이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었지만, 오히려 죽이려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를 미워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즉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예수가 하는 일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죄를 사해주는 일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를 두고 오히려 신성모독이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성령이 증언하고, 믿지 않는 자들 스스로 그렇게 말을 하므로 증인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를 용서받았는데, 그 용서는 과거가 되며, 그 다음 날부터 짓는 죄는 다시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가져가셨는데, 신도들은 아니라고 말을 한다. 이는 성령이 증인이 되고, 그렇게 말하는 자기 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한복음 14장 2-5절『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내 아버지의 집은 바로 하나님 나라(성전)를 의미하며, 성도의 심령 속의 새성전을 의미한다. 새성전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21장 1-2절『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는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진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재림하시어 임재하시므로, 그 분이 성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거처를 예비하러 하늘 나라로 승천하셨다. 그리고 새성전이라는 거처를 예비하신 것이다. 새성전에 예수님이 먼저 임재하시고, 그 다음에 육체로부터 벗어난 성도의 영이 이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도의 영을 영접한다고 하신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예수님은 제자들과 삼년간 지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다시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여주시고, 창세 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마는 잘 모르겠다는 말로 대답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구약성경 인용) 요한복음 13장 18절『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 인줄 너희가 믿게 하려함이로다.』 발꿈치 드는 자는 표면적으로는 키가 작은 자가 키를 크게 보이려고 발꿈치를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배반하는 자이고, 대적하는 자를 의미한다. 시편 41편 9절의 말씀으로『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에서 인용한 것으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비롯하여 그를 따르던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은 다윗의 죽음을 고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친구이자 책략가로 도움을 주던 아히도벨 마저 다윗을 배반하고 그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아히도벨은 다윗을 배신한 것으로는 모자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부추겨서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간음하도록 부추겼다. 그 계략을 받아들인 압살롬은 왕궁 옥상에 장막을 치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했다. 아들 압살롬이 그의 백성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후궁들과 동침하는 광경을 병상에 누워 지켜보던 다윗은 인간의 악함과 변덕스러움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는 이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갈등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다윗은 인간에 대한 철저한 절망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그의 철저한 절망은 비단 아들 압살롬과 친구 아히도벨의 모습을 통해서만이 아니었다. 바로 다윗 자신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부패한 죄인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다윗은 성적인 욕정을 채우기 위해서 신하 우리아의 아내를 겁탈했다. 그리고 그 죄를 숨기기 위해서 우리아를 사지로 내몰아 결국 그를 죽이는 살인죄를 범하였다. 다윗은 그...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요한복음 13장 3-6절『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고 하는데, 베드로가 발을 씻지못하도록 예수께 항변한다. 나중에는 발 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말한다. 가롯유다는 예수를 팔려고 하므로, 예수님이 가롯 유다를 발에 비유를 하면서, 목욕한 자는 깨끗하지만, 발은 씻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가룻유다는 발에 해당되고, 다른 열한명의 제자들은 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왜 발을 씻어야 하는가? 표면적으로는 발은 이동해야 하므로 씻지 않으면, 비위생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는 세례와 같은 의미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따라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는 것은 위생적인 문제가 아니라, 육적으로 죽고 영적으로 부활생명을 얻게하는 일인 것이다. 한 제자인 가롯유다는 자기 죄로 죽게 되지만, 나머지 열한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발을 씻는 행위(세례에서 물에 잠기는 것)인 것이다. 발이 물에 잠긴 것은 죽음을 상징하며, 가롯유다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12-13절『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제자들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 구약성경 인용 )   요한복음  12 장  37-40 절『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 ( 호 로고스 에사이우 투 프로페투 ) 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 테 아코에 헤몬 )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 브라키운 퀴리우 티니 아페칼뤼프데 )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 테튀플로겐 )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 에포로센 )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이아소마이 아우투스 )  하였음이더라 . 』 이는 이사야  6 장  9-10 절의 인용의 글이다 .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웃시야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 중 ,  남유다 왕국의  11 번째 왕이다 .  그는  16 살이 되던 해인 주전  790 년부터  739 년까지  52 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다 .  웃시야 왕은 하나님을 잘 믿는 왕이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형통하게 만드셨다 .  그러나 웃시야 왕은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했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했다 ....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구약성경의 인용) 요한복음 12장 30-34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쫒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동식물을 만드시고, 첫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후 이어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셨다. 이 말은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두셨다는 말이다.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 창조와 사람 창조를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사탄으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셔서 죄값을 치르고, 이 세상의 권세를 사탄으로부터 넘겨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심판받는 의미가 있다. 그가 심판을 받았으므로, 사탄에게는 세상의 지배권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통치자가 사탄에서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이다.   다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영적인 하나님 나라(천국)를 세우시는 것이다. 영적인 하나님 나라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심령 속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이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고, 인자라고도 했다. 그리고 니고데모와 대화를 할 때 요한복음 3장 14-15절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다. 바리새인들은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