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구약성경 인용)
요한복음 11장 55-56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유대인들이 유월절이 되면, 그 전에 예루살렘에 가서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옷을 빨거나, 물에 잠기거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유월절에 사용할 도구들을 씻거나 하는 의식을 나름대로 행했다. 레위기에는 성결규정이 여러군데 있는데,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목적은 대속죄일 행사를 위해 갔을 것이다. 죄를 용서받기 위한 범국가적인 행사인 유월절 행사를 거룩하게 지내고, 죄인으로서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용서받으며, 정결하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하기오스) 하셨느니라』거룩(하기오스 ἅγιος)이라는 말은 성결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거룩한데, 어떻게 인간이 거룩해질 수 있는가? 반문할지 모르나, 거룩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인정해 주신다. 그래서 거룩한 자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요,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거룩이신데, 거룩하다 라는 표현을 한다. 이는 하나님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 자체가 거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두 거룩인 것이다.
거룩(성결)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결을 위해 율법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힘들에게 행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이렇게 힘든 율법을 주신 것은 너희들은 스스로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제도를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성결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결을 어떤 형식적인 제의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거룩하게 생활하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 거룩하게 생활하는 것인가 반문하면, 결국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성경공부 잘하고, 십일조 잘 내고, 봉사활동 잘 하고, 선한 활동을 열심히 하고, 등등의 말을 쏟아내는 것이다.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삶이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연악한 육체의 행동으로 인해서 세상으로부터 비판받는 행동을 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러가지 형태로 성도들에게 행동을 주문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 베드로전서 3장 1절『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외모의 치장까지도 신경을 쓰라고 한다. 아름다운 외모로 치장하지 말고 심령의 썩지 않는 것으로 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심지어 부당하게 대우받아도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참으라고 했다. 선한 말을 하고, 거짓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말씀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성도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말씀들을 종합하여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면, 말씀대로 행동하는 신도들이 얼마나 될까? 목사를 비롯하여 신도들까지 자신있게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목사들은 성경 말씀대로 삽시다 라고 말을 해놓고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을 가끔 보고 듣는다. 자기가 뱉은 말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오늘날 목사들은 대부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잘못 알고있다.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신도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날마다 신도들을 죄의식을 갖겠끔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었음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 죽은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에 못박힌 자이다.
기독교의 정체성은 주체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구원받은 성도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믿는 자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왔던 상관없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거룩한 자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하늘의 빛을 통해서 성도의 삶을 조명해 주신다. 그래서 성도는 육의 삶에서 영의 삶으로 점차적으로 행동의 양식이 변해가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 속에서 자기의 상태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게 기도이고 예배가 되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사탄을 통해서 가시를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린 자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육적 음식을 잘 먹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자라기 위해 교육도 시키고 한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의 성장시기에 외면한다면 문제 아이가 될 것이다. 가끔 부모는 문제가 있는 자녀에게 사랑의 회초리를 들게된다. 하나님이 사탄의 가시를 통해서 사랑의 회초리를 들게되는 이유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모른채 여전히 세상의 일로 분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라고 인정해주시는데, 성도는 세상에만 몰두한다면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았지만 양은 다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27-30절『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성도의 행함은 거룩을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다. 필수조건이라고 말을 한다면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이 거룩한 자라고 말씀해 주셨으므로, 이제 그의 자녀로서 그에 맞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자녀가 아닌가? 그렇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사랑의 매를 들게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도는 육적 자기를 버리고 영적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기도로서, 성경 말씀으로서 훈련해야만 할 것이다.
거룩은 성도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거룩(성결)하게 삽시다 라는 말은 맞지 않다. 거룩한 성도에 어울리게 살아갑시다 라고 말을 해야만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어울릴까? 바로 죽어있는 이웃의 영을 살린다는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할 것이다. 그게 이웃 사랑이요 하나님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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