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사도행전 3장 13-16절『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톤 파이다)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에피 테 피스테이 투 오노마토스 아우투)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디)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여러 번 나온다. 출애굽기 3장 6절에서『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오늘날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인은 강을 건너온 자(이브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표면적으로는 요단강 저편에서 넘어온 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이주해 온 자라는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는데, 가나안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이 세상에서 육체 속에 갇히게 하셨으나, 약속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이게 부활의 의미가 된다.


누가복음 20장 36-38절『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부활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된다.


톤 파이다(τὸν παῖδα)는 소년이라는 의미다. 유대인들은 예수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사렛에서 태어나 겨우 삼십 조금 넘은 그 소년과 같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영화롭게 했다는 것이다. 성도도 마찬가지로 톤 파이다와 같은 존재이지만 주님이 택하시고 사용하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지만, 하나님이 다시 부활시킨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신다고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에피 테 피스테이 투 오노마토스 아우투)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에피 테 피스테이 투 오노마토스 아우투(ἐπὶ τῇ πίστει τοῦ ὀνόματος αὐτοῦ)는『그의 이름 안에서 그의 믿음 위에서』라는 의미다.


“그의 이름 안에서” 라는 말은 성부와 예수 그리스도, 성도가 성령으로 하나가 될 때, 그의 이름 안에 있게 된다. 그의 이름은 예수인 것이다. 예수는 구원자 또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의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헬라식 이름으로 표기한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그 이름의 뜻을 보다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주셨으며, 세상을 심판할 권능도 주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19절에서 제자들에게『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이렇게 권능을 가진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 안에서 세례를 주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로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성도(목사)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서 세례를 준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서 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안에서이다. 그런데, 목사들은 이 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고 변형시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는 표현을 맞지 않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주노라 라고 해야만 한다. 세례를 주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의 이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예수로 말미암아(디)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δι’ αὐτοῦ ἔδωκεν αὐτῷ τὴν ὁλοκληρίαν ταύτην ἀπέναντι πάντων ὑμῶν)

다시 직역해보면,『그(예수)를 통한 믿음이 모든 사람 앞에서 그(병자)에게 완전히 낫게함을 주셨느니라.』예수를 통한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인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완전히 낫는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병자가 나음을 입는 것이지만, 영적으로 부활생명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해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호 로고스께서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호 로고스께서 성도에게 말씀으로 역사하셔서, 권능을 나타내는데, 이 신실하신 권능이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아무나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을 바탕으로 호 로고스께서 역사하셔야 이렇게 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 예수를 믿을 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 안에서 믿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공유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공유하지 않으면 예수 안에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신도들은 예수의 십자가에만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먼 미래, 즉 육체가 죽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신도들은 생각하므로 반쪽짜리 복음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반쪽짜리 복음은 온전한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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